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보면 초가지붕을 얹은 아담한 정자가 나온다. 궁 안에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가 낯설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곳은 조선 시대 임금이 몸소 농사를 주관했던 친경례를 행하던 청의정이다. 군주가 구중궁궐 안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백성과 소통하던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처럼 각 궁의 정문 이름은 모두 ‘될 화(化)’ 자가 들어 있다. 백성을 이끌어 감화하게 한다는 의미로 문 이름 하나에도 백성이 담겨 있다. 조선의 궁은 이렇듯 늘 백성 가까이에 있었고 우리네 삶과 혼이 함께해온 역사의 보물창고다.
지난달 28일부터 서울시내 4대궁과 종묘는 밤낮없이 문을 활짝 열고 ‘궁중문화축전’이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궁중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며 살아 있는 궁궐에서 펼쳐지는 축제의 주인공이 될 특별한 기회다.
경복궁 궁중 부엌인 소주방에서는 장금이의 손맛을 담아 정성껏 차린 수라상을 즐길 수 있다. 왕실도서관인 집옥재에서는 일상의 번뇌를 잠시 잊고 독서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창덕궁에서는 백성의 고단함을 달래주고자 했던 임금의 고민을 담은 ‘어제시(御製詩)’ 전시와 함께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백성에게도 ‘혜민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방됐던 내의원의 한의학 체험도 해볼 수 있게 했다.
창경궁에서는 1750년 영조와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산책을 재현한 ‘1750 시간여행, 그날’을 통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마련했다. 고종의 궁궐 덕수궁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공연과 체험행사가 열린다. 축전의 마지막 날인 7일에는 종묘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종묘대제’의 장엄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600여년 세월 동안 궁궐은 늘 우리 삶 가까이에 존재해왔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의 삶을 어루만지고자 했던 궁궐, 그 궁궐이 이제 우리 삶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걸어 들어와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궁중문화축전을 통해 멋과 흥으로 넘치는 봄꽃 만개한 궁궐에서 격조 높은 아름다움과 축제의 기쁨을 한껏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