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인천에는 국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양해 표심은 전반적으로 균형을 이뤄왔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지방 표심을 보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특히 영호남의 민심 동향을 보고 판세를 읽은 뒤 지지후보를 확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4일 서울·경기·인천 지역 곳곳에서 시민들을 만나보니 표심은 선거 구도를 읽는 장고의 단계를 끝내고 지지 후보를 확정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었다. 선거 막바지 구도가 진보 대 보수의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로 대전환된 탓이다.
진보 유권자를 자처하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 입장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경우가 적잖았다. 특히 청년층이 그랬다. 속내를 밝히는 데 조심스러웠던 기존의 유권자 성향이 변화되며 당당히 정치성향을 밝히는 신문화가 엿보였다. 서울 신촌에서 만난 회사원 김선일(31·가명)씨도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사람을 뽑겠다”며 문 후보 지지 입장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김씨는 문 후보가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 일하면서 국정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는 점도 후보선택에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중도성향 유권자층에서는 아예 보수 후보에서 진보 후보로 갈아타려는 이들도 포착됐다. 50대 자영업자 염기영(가명)씨는 “원래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지만 최근 TV토론회를 보고 문 후보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주요 경쟁자와 지지율 격차를 벌린 문 후보의 대세론이 20·30대 연령의 청년층은 물론이고 40·50대 중년층에도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실감케 한 장면이다.
보수성향이라고 밝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표심 결집 분위기가 감지됐다. 특히 고령자층들이 안철수 국민의당·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사이에서 막판 저울질을 하고 있음이 감지됐다. 안보 이슈가 이 같은 표심 흐름의 방아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서 만난 이형남(71·가명)씨는 문 후보의 안보관을 의심하며 “안 후보가 더 정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후보에서 홍 후보로 지지 대상을 바꾸겠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서울의 한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한다는 60대 서진만(가명)씨는 “클럽 멤버 중 절반이 홍준표를 지지한다”며 “대선후보 TV토론 후 안철수는 대통령감으로는 아직 미흡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홍준표를 지지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경기도 하남에서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이영진(30·가명)씨 역시 “선거 때마다 보수 후보를 뽑아서 이번에는 안철수를 찍으려고 했는데 TV토론회를 보고 너무 실망해서 홍준표를 찍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어차피 판세가 굳어지고 있다면 당선될 사람에게 표를 밀어주는 전략투표를 하기보다는 원래 지지하던 후보를 찍어주겠다는 소신투표의 움직임도 보인다. 경기도에서 살고 있다는 50대 초반 박씨는 “유승민 후보를 지지한다”며 “안보와 경제에 해박하고 다른 후보들과 달리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점이 좋다”고 설명했다. 진보 유권자임을 자처하는 20대 대학생 이보람(가명)씨는 서울 홍대역 인근에서 만나 “TV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 유일하게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발언을 해 좋아졌다”며 “그동안 사표가 될 것 같아 고민했는데 심 후보를 찍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기혁·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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