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총선이 열린 1996년 4월 강원 고성군에서 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이르는 3,762㏊의 산림과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고성 산불은 재산 피해만 3,000억원에 달해 건국 이래 최대의 산불로 기록됐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동해안 전역을 덮친 초대형 산불로 85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래서 선거가 열리는 해에는 동해안 지역에 대형 산불이 유난히 많이 발생한다는 속설까지 전해지고 있다.
산불의 규모와 피해가 늘어나는 것은 변화무쌍한 날씨 탓이 크다. 해마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데다 바람까지 강해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미국 서부 지역의 산불 피해가 2~4배 늘어난다는 연구자료도 나와 있다. 더욱이 산 중턱에서 발생하는 입산자 실화가 많아 조기 발견도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나 야간 산불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산불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해는 음력 윤달이 끼어 있어 묘소 이장 수요가 많아 산불 발생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해외에서는 산불 예방에 사물인터넷(IoT)이나 드론을 활용하는 사례도 많다. 미국에서는 ‘스마트 숲’이라고 해 데이터를 무선 센서 네트워크로 연결해 화재를 조기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지표 조도나 온도는 물론 동물 소리까지 분석해 이상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스페인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기기에서 습도나 이산화탄소를 분석해 화재가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관계기관에 통보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강원 강릉과 삼척 일대에 대형 산불이 발생해 민가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소나무가 울창한 강릉 성산 지역에는 조상의 묘소가 많아 후손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지역민들은 그 흔한 재난문자 하나 없이 불안한 밤을 지새워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재해 현장을 찾았다지만 ‘안전 한국’은 여전히 먼 얘기인 듯하다. 피해 지역의 조속한 복구를 한마음으로 기원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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