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5월10일,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이 29세 수사관을 법무부 수사국장 서리에 임명했다. 청년의 이름은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 조지 워싱턴 대학 야간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무부에 공채로 입사한 경력 7년 차 공무원이었다. 대학 시절 의회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으로 법무부 문서검열관, 전시 요주의 외국인 감시관을 거쳤다. 1차 세계대전 종결 무렵 수사국으로 옮겨 수사관 경력 5년 만에 중책을 맡게 된 그는 7개월 만에 ‘서리’ 꼬리를 뗐다. 1908년 법무부 수사국 창설 이래 5번째 국장이었다.
역대 국장들이 선임될 때 평균 나이는 41.7세. 창설 4년째인 1912년 2대 국장에 오른 브루스 비엘라스키의 당시 나이 역시 29세였으나 직원 수가 적었다. 불과 40여 명이던 수사관들의 권한도 작았다. 전국적인 수사망을 깔기에는 인원이 태부족이었고 심지어 총기 소유도 제한 받았다. 후버가 국장에 선임될 무렵 직원은 441명의 특별수사관을 포함해 모두 650명. 젊은 나이에 적지 않은 조직의 책임자에 오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무정부주의자의 혐의를 찾아내고 국외 추방하는 공을 세웠다. 두 번째로 자료를 구분하고 보관하는데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하며 쌓은 경험 덕분이다.
소년등과(少年登科)한 후버는 재임 기록도 갈아치웠다. 전임 수사국장 4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3년 9개월인 반면 후버는 11년 넘게 일했다. 뿐만 아니다. 수사국이 법무부에서 독립하며 장관급 연방수사국(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으로 재탄생한 1935년 이후에도 1972년 자연사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수사국장 시절부터 48년 동안 FBI 수장으로 군림한 후버가 ‘모신 게 아니라 상대했던’ 대통령만 8명. 캘빈 쿨리지와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거쳤다.
연방수사국의 수장으로 장기간 재임하며 후버는 미국 사회 안정에 적지 않게 공헌했다. 자택에서 사망한 그의 장례식에는 내로라하는 조문객 2만 5,000여명이 몰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가 끼친 해악이 드러나고 있다. 후버 사망 이후 실시된 의회 조사에 따르면 FBI 공식 수사 문건 가운데 범죄나 국가 안보에 관련된 문서는 20% 미만. 나머지는 사회 저명인사나 연예인,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등 정치인의 약점을 조사한 비밀문건, 이른바 후버 파일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의 상당수는 자신이 관련된 비밀 문건의 존재 여부가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백인 우월주의자였던 후버는 흑인 민권 운동도 그만의 방식으로 다뤘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연설을 마친 바로 그날 호텔에서 치른 혼외정사를 몰래 카메라에 담아 언론에 돌렸다. 어떤 언론도 이를 보도하지 않자 가정을 파탄시키려 그 아내에게 테이프를 보낸 적도 있다. 반핵운동에 나서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를 ‘빨갱이’로 몰았던 일화도 유명하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독재자’를 제작, 상영한 뒤 십 수년에 걸친 후버의 집요한 추적에 못 이겨 미국을 등지고 스위스 망명길을 떠났다. 노동조합 파괴 운동에도 앞장섰다.
배반도 서슴지 않았다. 유력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근거도 없이 공산주의자로 몰았던 ‘매카시 광풍’의 주역인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 찰떡 공조를 과시하던 매카시가 미 육군마저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려다 역풍을 맞자 비정하게 돌아섰다. 역대 대통령들도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해임 시도가 몇 번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루스벨트는 그를 해임하려다 병사하고 트루먼은 미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해 FBI 견제에 나섰지만 매카시즘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후버에 막혔다. 마릴린 몬로 등 여자 문제로 후버에게 협박 당하던 케네디는 교체를 추진하던 중 암살 당했다.
케네디의 후임인 존슨은 후버에게 종신직을 선물로 안겼다. 닉슨은 후버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에 반색하며 사무실부터 샅샅이 뒤졌다. 자신과 관련한 비밀 장부(X-File)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다. 닉슨은 ‘후버가 계속 살았더라면 100살까지 FBI 국장을 맡았을 것’이라는 독설까지 던졌다. 후버 이후 미국은 FBI 국장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기 연장을 허락하고 있다. 감시하고 견제한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FBI는 이미 거대한 공룡 조직이다. 예산만 83억 달러, 직원 수는 3만 5,104명에 이른다. 9.11테러 이후 연방정부의 정보기관이 더욱 늘어나는 것도 테러 방지 목적 외에 이미 비대해진 FBI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후버가 반세기 가까이 재임하는 동안 저질렀던 ‘정보 독점의 폐해’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일까. 한국의 권력 기관, 정보기관들은 특정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운가. 참호(塹壕)를 파고 적폐 기득권의 전위병으로 전락한 세월로 따지면 후버의 재임 기간에 버금간다. 민간인 사찰과 블랙 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권력보다 더 나쁜 것은 불법과 탈법마저 소명으로 여기는 하부 구조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19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새로운 시대를 다짐하고 있으나 과연 이번에는 국민이 위탁한 권력을 사유화하고도 당연시 여기는 구조를 깰 수 있을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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