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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톡] ‘브라이트 나잇’-‘메나쉬’, 아버지가 처음이라 서툰 그대들에게

배우 윤여정은 말했다. “나 67살이 처음이야”라고. ‘존경할만한 어른’인 그에게도 인생은 어렵다. 처음 살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단다.

지난 6일 폐막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두 쌍의 부자(父子)를 만났다. 나이도, 상황도, 국가도 다르지만 닮은 점이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계’에 던져지고 말았다는 것. 그래서 몹시 어설프고 서툴다는 것. 윤여정의 말과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들이 되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다.

/사진=‘브라이트 나잇’, ‘메나쉬’ 포스터




‘브라이트 나잇(Bright Nights)’(감독 토마스 아슬란)은 독일 베를린에 사는 마이클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아들 루이스와 노르웨이로 떠난 이야기를 그렸다.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살고 있는 루이스는 아버지 마이클과 관계가 썩 좋지 않다. 삐걱거리며 동행을 시작한 부자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감돈다.

마이클은 루이스에게 여전히 축구를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루이스는 그만둔 지 오래라고 답한다. 두 사람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 차에서 마이클와 루이스는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분을 이기지 못해 상대방에게 소리도 지른다. 루이스는 차에서 내리고 마이클은 루이스를 두고 떠난다. 그러나 마이클은 결국 되돌아오고 루이스는 “올 줄 알았다”며 차에 탄다. 계속 비슷한 상황의 반복이다. 날선 감정을 분출하고 결국 감싸 안고.

‘브라이트 나잇’은 노르웨이를 달리는 마이클과 루이스를 고요히 담아낸다. 두 사람에게 특별한 외부적 갈등을 가하지 않는다. 그저 백야 속 끝없이 펼쳐진 길 위에 세워둘 뿐이다. 마이클 역을 맡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는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프리드리히는 서툰 아버지를 덤덤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극적으로 짜이지 않은 감정의 변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적 몰입을 가능케 한다.

/사진=‘브라이트 나잇’ 스틸컷


‘메나쉬(Menashe)’(감독 조슈아 Z. 웨인스타인)는 미국 브룩클린에 사는 유대인 메나쉬의 이야기다. 아내 레아를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아들 리벤밖에 없다. 그러나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혼자 남은 아버지는 아들을 키울 수 없다. 그들 시각에서 ‘완벽한’ 가정을 꾸린 삼촌에게 맡겨야 한다. 게다가 메나쉬는 실수를 연발하는 상점 점원이다. 궁핍한 상황 속 가장으로서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는 데도 시큰둥하고, 다른 유대인들처럼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운반하던 생선은 모조리 땅에 떨어뜨려 못 쓰게 만드는 메나쉬다. “날 무시하지 마라”며 리벤을 데려오지만, 아침식사 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 결국 리벤은 다시 삼촌의 집으로 보내진다. 메나쉬는 마치 마지막 기회라는 듯, 아내의 추모식을 혼자서 준비하겠다고 고집 같은 각오를 다진다.

‘메나쉬’는 국내 관객들에게 다소 생소할 유대인의 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조금은 도태된 아버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비춘다. 그 과정에서 일상 전반에 뻗친 종교적 굴레를 비판하기도, 수용하기도 한다. 특정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현실과 가까운 생활을 보여주며 잔잔한 울림을 안긴다. 그래서일까. ‘메나쉬’는 지난 1월, 가장 권위 있는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진=‘메나쉬’ 스틸컷


‘브라이트 나잇’과 ‘메나쉬’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서사가 있다. 아버지의 서투름이다. 누구도 마이클과 메나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들을 키우며 본인이 터득해야만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가 어디 있을까. 자식에게 애정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몸소 느껴야 한다. 애정 위에 섬세한 관심과 노력을 쌓아야 한다.

마이클은 루이스에게 소리를 지르고, 메나쉬는 홧김에 리벤의 뺨을 때린다. 아버지의 서투름은 아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대립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아들의 부재 속 절망을 느끼고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아들도 아버지의 서투름을 기꺼이 포용한다. 갈등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네 사람은 성장의 밑그림을 그린다.

두 영화는 결말에서도 비슷한 시선을 가진다. 어느 쪽으로도 부자의 관계를 매듭짓지 않는다. 마이클은 여정을 끝낸 뒤 홀로 버스에 오른다. 루이스는 공항에 마중 나온 어머니를 따라 간다. 메나쉬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다시 인파 속에 섞여든다. 리벤은 여전히 삼촌의 집에 있다. 마이클과 메나쉬는 아버지로서 또 좌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좁혔던 아들과의 거리가 다시 멀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남은 것은 있다. 혹여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분명히 맛본 성취와 유대감이 있다. 루이스는 헤어지기 전 뒤를 돌아 마이클을 보고, 마이클은 백야 속 피했던 햇빛을 정면으로 쬔다. 메나쉬는 본인의 힘으로 어설프게나마 추모식을 마쳤다. 인파 속에 섞여드는 그는 전과 달리 단정한 착장이다.

성장은 한 걸음에 이뤄지지 않는다. 처음 맺은 관계가 완벽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 번의 갈등과 화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브라이트 나잇’과 ‘메나쉬’는 담담하게 실패와 성장의 과정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누구나 처음은 서툴다고 위로한다. 동시에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씨앗’을 심는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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