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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꿈의 제인’ 우리 모두의 시시한 행복을 위하여

어쩌다 행복한...언해피한 이방인에게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쭈욱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라고 이야기하는 여인이 있다. 공감의 눈빛을 반짝이게 한다. 이어 “이런 X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서 뭐 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라고 덤덤히 말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꿈의 제인’을 만났다.

/사진=‘꿈의 제인’ 예고편 캡처








‘꿈의 제인’과의 조우는 낯설음에서 시작해 위로의 터치로 마무리됐다. ‘제인’은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주는 구원자, 불행이 일상처럼 산재해 있는 어

느 날 명쾌한 해답을 건네는 친구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대답을 제시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매일 들이닥치는 불행 앞에서 자꾸만 움츠려 드는 이라면 제인을 꼭 만나 볼 것을 권한다.

조현훈 감독의 ‘꿈의 제인’은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3명의 이야기를 주요 줄기로 보여준다. 언해피한 이방인들의 대모격인 트렌스 젠더 제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소녀 소현, 가출팸을 떠나 하나 뿐인 동생과 오순도순 살고 싶은 생활력 강한 소녀 지수가 바로 주인공이다.

‘꿈의 제인’은 꿈과 현실이 혼재된 듯한 인상을 준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과 공간의 논리가 어긋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초현실적인 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인물들의 절박한 꿈과 상상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작은 희망은 여지없이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고, 차가운 현실은 그 전과 다름없이 가슴에 생채기를 안긴다.

영화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소현의 편지의 모습을 자주 비춘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로 시작해 “누군가가 그랬어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래요”라는 말은 삶이라는 끈을 홀로 힘겹게 쥐고 살아가는 수 많은 ‘소현’을 소환하게 한다. 운명의 공동체란 이름 앞에 그저 가출팸의 일원일 뿐인 소현, 미움 받기 싫어 맞춤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소현, 낯선 사람들 속에서 용기를 내보는 소현, 마지막 가족 앞에서도 배신당한 소현 등 우리의 소현은 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소녀 ‘소현’과 누구와도 함께하길 원하는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의 특별한 만남이라고 정리된다. 영화를 보기 전 와 닿지 않았던 이 설명은 영화를 보고 난 후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사진=㈜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꿈의 제인’은 우리 모두의 시시한 행복을 위하여 건배를 드는 영화이다. 그것도 친근한 먹거리와 함께 말이다. 주머니에 쉽게 넣고 다니면서 오물거리며 먹을 수 있는 마이x, 고급스런 초콜릿 두 개를 입안에 넣으면 2배로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는 페레XX,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란 제인의 신조를 떠올리게 하는 딸기 케이크 조각 등 영화 곳곳에서 임팩트 있는 소품들이 등장한다. 삶의 고비 고비 마다 제인의 얼굴과 함께 떠오를 먹거리들이다.

‘어둠이 깊은 곳에서 빛은 강렬해진다‘’고 했나.소현의 감정을 따라 전개되는 EDM 뮤지션인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의 아름다운 음악들은 쓸쓸하거나 처연한 느낌이 섞여 막연한 낙관이 아닌 ‘절망 속 희망’ 혹은 ‘슬픈 환희’ 같은 역설로 승화됐다. 특히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는 제인이 존재하는 공간과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온도차는, 삶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진정성 있는 연기로 빛나는 앙상블 펼친 세 배우 구교환, 이민지, 이주영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중 독보적인 연기로 한국 영화계에 지금껏 없었던 독창적인 캐릭터 ‘제인’을 창조해낸 배우 구교환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남자배우상을 기댈 곳 없는 외톨이 소녀 ‘소현’역으로 열연을 펼친 이민지는 올해의 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현실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은 구원자 ‘제인’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줬다. 새로운 세상의 또 다른 문을 열고 나갈지, 열린 문을 바로 닫을지는 제인과의 교감도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느릿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말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이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지 않겠죠.

불행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이렇게 여러분들이랑 즐거운 날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꿈의 제인> 제인 대사 中-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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