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터리] 코는 크게, 눈은 작게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한비자 설림편(說林篇)에 나오는 얼굴 조각 일화다. 주나라 때 인물 조각으로 유명한 환혁(桓赫)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산 사람의 얼굴처럼 표정 있는 조각을 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환혁은 이렇게 답했다. “코를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해야 한다. 코는 크면 작게 깎을 수 있지만 이미 작게 깎은 것은 크게 할 수 없다. 한데 눈은 작으면 크게 깎을 수 있지만 이미 크게 새긴 것을 작게 할 수는 없다.”

2,000년 전의 옛 일화는 일 처리 방법에 대한 뜻깊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일을 추진할 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 하기보다 여지를 두고 유연함을 갖춰 점진적으로 헤쳐나가는 게 옳을 때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 공약을 보면 공정·정의, 성장·복지, 통일·안전, 환경·문화의 4대 비전을 중심으로 12대 약속, 205개의 공약이 제시됐다. 많은 공약을 하나하나 실행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가능해 보였던 공약이라도 실제로 추진해보면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코는 크고 눈은 작게 하라는 환혁의 말을 곱씹어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정부의 공약이행 방법을 얼굴 조각 일화에 한 번 대입해보자. 코를 크게 하고 눈을 작게 조각하면 나중에 수정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205개의 공약 중에서 작게 시작해야 하는 것도 있고 반대로 제도의 근본 틀을 바꾼 후 미세조정해나가야 하는 정책도 있다. 파급력이 얼마나 되는지 혹은 이해당사자 간 조율은 얼마나 필요한지 여부를 잘 가려 강약을 조절하고 공약 이행수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얼굴 조각은 몇 ㎝를 더 깎고 몇 ㎜를 다듬느냐도 중요하나 최종 결과는 생동감 있는 표정을 살리는 데 있다. 정부정책도 단순히 공약 몇 개를 추진하고 이행해 성장률을 조금 더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고 국민들이 살 만한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다.

조각은 상황 변화에 따른 유연한 대처도 필요하다. 여건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깎아만 대다가는 자칫 얼굴을 망칠 수 있다. 정책도 공약 목표에 집착하다 보면 탈이 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은 ‘선거 때 내놓은 정책을 다 집행하면 미국은 확실히 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원래 원자력 발전을 지지했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폐기 쪽으로 정책을 선회한 바 있다. 무조건적으로 공약에만 얽매일 게 아니라 국가발전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정책을 보완해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끝으로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도 필요하다. 진짜 사람 같은 그리스 조각상도 BC 8세기 이전에는 도형으로 간단하게 표현됐다. 그러나 이후 이집트·메소포타미아와의 교류를 통해 현실감·입체감을 갖게 됐다. 새 정부도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행복한 나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