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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用美외교'로 對 北·中·日 협상력 강화...韓, 동북아 가교국 돼야"

[서경이 만난 사람] 국제정치 대가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美日 능가하는 '한미동맹' 갖춰야 한반도 평화체제 가능

트럼프의 '압박·개입 대북정책' 북핵해결 카드로 활용을

국방비 증액하고 전작권 환수 통해 발언권도 강화 필요

사드, 中엔 동반자 강조하고 美와 일시 유보 협의로 풀어야









“‘용미주의(用美主義) 외교’를 통해 중국·일본·북한에 대한 협상력을 높여 동북아 가교국가(架橋國家)가 돼야 합니다.”

국제정치 대가인 임혁백(65·사진) 고려대 명예교수의 지론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외교무능으로 대북 협상 레버리지(영향력)를 상실하며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한국 건너뛰기)이라는 곤궁한 처지가 된 상황에서 고도화·경량화되는 북핵·미사일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 등 얽히고설킨 외교안보 이슈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아가 2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새롭게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세운 문재인 정권이 한반도 문제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잡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 최근 임 명예교수를 여러 차례 만나고 이날 인사 직후 전화통화를 통해 고견을 들어봤다.

그가 사무실로 쓰는 서울 종로구 사직로의 한 오피스텔에는 3면이 4,000여권의 책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어 그의 학문적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책상에는 최근 출간된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책장에는 가족과 함께 스승으로 세계적 정치학 석학인 애덤 셰보르스키 교수의 별장에서 식사를 하는 사진과 ‘외교의 달인’으로 손꼽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임 명예교수는 최근 홍석현 미국특사가 만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Dereliction of Duty(임무방기)’라는 책을 보여주며 “‘전쟁은 월남의 전장이 아니라 워싱턴DC에서 결정됐다’는 그의 말처럼 워싱턴과의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한 ‘워싱턴 외교’를 통해 중국·일본과의 외적균형을 구축해야 역설적으로 자주국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미일동맹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높여 중국·일본·북한과의 협상력을 높여야 미중일러 간 한반도 평화합의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며 어설프게 중국 우대책을 폈다가 미국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 ‘장기판의 졸’로 무시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자전거 바퀴처럼 미국을 중심에 두고 부챗살을 뻗는 허브앤드스포크(hub-and-spoke) 전략에 맞춰 한중일 3각균형체제를 구축해야 한반도 평화체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최대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에 맞춰 북핵 폐기를 전제로 우선 동결 상태에서 대화를 통해 평화유지→평화구축→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관계를 가치와 이념에 기반을 둔 동맹(value and interest based alliance)에서 나아가 이익에 기반을 둔 실용적 동맹(National interest based alliance)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실제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간) 주례연설에서 “(이달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친구들을 만나는데 파트너(동맹)들이 친구임을 보여줘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북핵이 미 본토를 위협할 정도까지 되자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때 사드 배치,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미국과 군사정보 공유 강화 등을 패키지로 딜(거래)하고 한미동맹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그는 이어 “트럼프가 사드 배치를 유보하는 대신 주한미군 분담금, 한국 국방비의 획기적 증액과 미국에 유리한 FTA 재개정에 나설 것으로 본다”며 “중세의 위대한 종교개혁가이자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가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한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일본에 국내총생산(GDP)의 1%인 방위비(올해 52조원)를 2%까지 늘리라고 요구하며 군국주의화에 날개를 달아주는 상황에서 우리도 일정 부분 평화안보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임 명예교수의 생각이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 인상과 국방비 증액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최종 사드 배치·가동을 일단 유보하고 앞으로 사드보다 효과가 더 좋은 이지스함의 SM-3 요격미사일로 대체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게 그의 제안이다.

일방적인 사드 사태의 재연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 △미일동맹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통해 한미동맹의 혁신을 꾀해 동북아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임 명예교수는 “트럼프가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만 아니면 됨) 원칙에 따라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은 모두 뒤집고 있다”며 “오바마의 작품인 사드를 놓고 ‘한국이 10억달러를 내라’고 했던 것은 그만큼 미국 돈을 들여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며 하더라도 한국이 그만큼 다른 방법으로 부담하라는 주장”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공화당 실력자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19일(현지시간) “사드 돈은 미국이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홍 특사가 전했다.

이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드 문제를 정권교체 후 미국과 협상하고 국회 비준과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던 것은 매우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사드는 기본적으로 미중의 패권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그들 간 ‘주고받기’를 통해 타협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중국에 ‘사드 경제보복은 옳지 않지만 우리도 국회비준 등의 과정을 통해 수습에 나서겠다.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이 추진 중인 신 실크로드 전략)에도 적극 동참하겠다. 다만 우리는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국과 안보·경제에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히고 미국과 사드 부분 배치와 부분 가동을 일시적으로 유보하는 것을 협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 명예교수는 나아가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개입 정책’이 오바마 시절보다 우리에게 유리하다며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남중국해를 중국에 양보하는 대신 중국에 북한 핵 문제를 아웃소싱하는 것도 제재와 대화라는 투트랙을 선호하는 중국과 우리가 통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앞서 오바마는 대북 봉쇄와 제재에 초점을 맞춰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펴다가 막판 투트랙 전략을 모색했으나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확대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보조를 같이하며 여건을 봐가며 ‘제2기 햇볕정책(sunshine policy II 또는 neo-sunshine policy)’ 또는 ‘스마트 포용정책(smart engagement)’을 통한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명박 정권이 ‘비핵·개방·3000(핵 폐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으로 지원)’을 하고 박근혜 정권이 북한체제 붕괴론을 염두에 둔 통일대박론을 폈으나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북핵·미사일 능력만 커졌습니다. 외교무능으로 개성공단·금강산·대륙횡단철도·나진개발 등의 레버리지를 상실하고 오바마의 제재와 압박정책에만 편승했다가 우리 처지만 어려워졌어요.” 이제는 코리아 이니시에이팅(Korea initiating·한국 주도하기)을 통한 스마트 포용정책으로 북미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딜을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묻지마 포용정책(unconditional engagement)’은 금물이며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는 대북 유화주의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1970년대 중후반 해군 장교로 근무할 때 연평도에서 북한군과의 충돌을 겪은 적이 있는데 당시 전쟁의 위험과 참상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느꼈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남북이 충돌할 때마다 협상으로 해결했고 나포된 북한 선원과 병사를 돌려보냈습니다. 외교에서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은 없어요.”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프로필

△1952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석사·박사 △1991~1998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8~2004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정치행정분과 위원장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장 △1998~2017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8~2012년 고려대 정책대학원 원장 △미국 조지타운대, 듀크대, 스탠퍼드대, 존스홉킨스대(SAIS) 초빙교수 △2015년 대한민국 학술원 학술원상 수상(저서 ‘비동시성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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