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23)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두 개의 계정을 운영 중이다. 하나는 공개, 다른 하나는 비공개다. 공개 계정에는 ‘인생사진(인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나온 사진)’을 프로필 사진로 설정하고 ‘있어 보이는’ 사진들을 올리는 데 주력한다. ‘힙하다(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것보다 조금 더 남다르고 차별화된 취향) ’고 입소문이 난 루프탑 카페, 시각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감각적인 소품과 함께 놓인 예쁜 커피잔 등을 ‘일상’, ‘데일리’ 등의 해시태그(#·게시물을 분류하기 위한 꼬리표지만 제목이나 내용을 대신하기도 한다)를 붙여 올린다. 반면 비공개 계정은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별 볼 일 없지만 그 순간의 감정을 배출하거나 기억하고 싶을 때 올린다. 먹다 남은 배달 음식, 편의점에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 등 사진이 올라간다.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공개 계정과는 다르게 우울한 감정이나 취업 준비로 좌절했던 일을 적기도 한다.
과연 어느 계정이 진짜 당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걸까.
뷰티, 패션, 음식, 여행, 인테리어 등 취향에 따라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정체성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좋아요’를 얼마나 받느냐가 개인의 취향이 얼마나 그럴싸한 건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면서 나만의 취향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보다 있어 보이게 표현하는 능력인 ‘있어빌리티’가 중요해진 탓이다.
있어 보이는 사진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누르는 ‘좋아요’를 기다리는 순간까지 이용자들은 ‘무대에 오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모두가 ‘일상’, ‘데일리’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서 올리는 인증샷은 사실 현실의 특정 순간을 연출, 편집한 결과다. 일상이라는 태그를 달고 사진을 올리지만 사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이나 취업준비의 순간들은 지워져 있다. 즐겁거나 여유를 즐기는 순간이 아니라 우울한 느낌을 주거나 폼나지 않는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를 받지 못하게 돼 사진을 올릴 때마다 ‘자기검열’도 엄격해진다.
김씨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이 대부분 여행스타그램, 럽스타그램(연애)이거나 스펙을 자랑하거나 취업성공을 인증하는 내용들인데 그렇지 않은 게시물을 올리면 스스로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며 “(비공개 계정을 만든 데는) 있어 보이는 사진들을 올리고 싶어도 그럴 돈도 없고 일부러 찾기 귀찮은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연구원은 “지금의 20대는 입시와 취업 등을 거치면서 평가와 경쟁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취향이나 취미도 평가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라며 “취향이나 취미가 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압박을 느껴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일상 속에서 아는 지인들에게 공개하지 않기 위해 두 개의 계정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임모(26)씨는 오프라인 지인들이 아는 계정은 한강 나들이 등 무난한 사진을 올리거나 카페 인증샷을 올리고 지인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계정에는 허세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로 쇼핑 사진 등을 올린다. 취향이나 취미가 다른 지인들에게 ‘나만의 취향’을 억지로 이해시키기 보다는 해시태그를 통해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SNS를 통해 소통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오프라인과 달리 지인들의 평가를 신경쓰지 않고 과감한 사진들을 올리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용도가 다른 여러 계정을 운영하면서 다른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프라인 인간관계가 SNS 상에 그대로 옮겨지는 페이스북과는 또 다른 양태다. 두 개의 다른 자아로 살아가고 다른 식의 관계를 맺다 보니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영국왕립보건학회에서도 지난달 SNS와 우울감 등을 조사한 결과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SNS로 인스타그램을 꼽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을 연구하는 성용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유독 인스타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경쟁과 자기과시라는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이전에는 집들이를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사는 지를 보여줄 수 없었다면 이제 음식 인증샷에 언뜻 보이는 식기 브랜드나 셀카 뒤로 보이는 집안의 가구나 인테리어로도 충분히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하거나 과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성 교수는 “‘어그로꾼(온라인 상에서 관심을 받기 위해 허언증 등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 늘어나거나 자아정체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도 SNS 피로감이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진을 보정해서 올리고 댓글과 좋아요가 달리는 것을 기다리고 좋아요 개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상의 스트레스가 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이를 보여주는 해시태그가 ‘Livingtheinstagramlife’, ‘Livingtheinstagramdream’ 등이다. 이는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의 ‘Living the life’에 인스타그램이 더해지면서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추구하는 대로 먹고 입고 여행하고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말에는 자조적인 의미도 더해진다. 사진을 있어보이게 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거나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