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부터 두 달 간의 맹연습에 돌입한 고양이 세 마리가 지난달 31일 연습실을 탈출했다. 연습장에서 1㎞도 벗어나지 못하고 서울 신당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고양이들은 뮤지컬 ‘캣츠’의 주역 로라 에밋(매혹적인 고양이 ‘그리자벨라’ 역)·윌 리차드슨(반항아 고양이 ‘럼 텀 터거’ 역)·브래드 리틀(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 역)이다. 이날은 세 사람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오는 7월 1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이 오를 때면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에 화려한 분장과 함께 고양이로 완벽 변신할 예정이다.
고양이를 흉내 내며 느끼는 ‘신체적인 난관’에 대한 질문에 에밋이 “캣츠가 어려운 작품인 건 유연성 때문이 아니다”며 운을 뗐다. 세 사람 모두 방점을 찍는 부분은 연기와 스토리텔링. 에밋은 “배우마다 각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관객들과 교감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도전”이라며 “문제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로서 이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동영상 오디션을 본 리틀을 포함해 세 사람은 모두 미국, 영국 등에서 5개월간 이어진 오디션을 통해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직접 선발했다. 리차드슨은 지난해에도 럼 텀 터거 역으로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지만 다시 한번 오디션을 통과해야 했다. 선배 고양이로서 두 배우에게 해줄 조언으로 리자드슨은 “스테미너”라며 엄지를 추켜 세웠다. “매일 같이 고양이 연기를 하다 보면 체력이 달릴 때가 많은데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연기도 노래도 춤도 완벽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자 53세에 고양이 연기에 도전하게 된 리틀이 바로 공감을 표했다. “지금도 연습이 끝나면 매일 밤 근육통에 시달려요. 고양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궁금하다면 우선 큰 소리로 노래를 한 곡 부르고 운동장을 세 바퀴 돌고 다시 노래를 부르는 걸 여러 번 반복해 보세요. 물론 동시에 고양이처럼 행동하면서요. 그럼 우리 심정을 이해할 겁니다.”
캣츠를 장식하는 젤리클 고양이들에겐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분장도 스스로 하고, 의상도 직접 찾아 입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외형상 고양이가 되면 행동도 그에 맞게 해야 한다. 첫 연습 때는 평소 쓰던 향수를 각자의 연습용 꼬리에 뿌려 흩어놓고 ‘자기 꼬리 찾기’ 시합을 했을 정도다. 이 시합에서 리차드슨과 에밋은 단번에 자기 꼬리를 찾았지만 브래드는 “늙은 고양이답게” 서너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찾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캐스팅과 동시에 이들은 각자 고양이 행동 연구에 돌입했다.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을 하루 종일 감상하거나 캣 카페를 찾기도 했다. 물론 제작사에서 고양이와 관련된 자료를 한 아름 안겨줘 이를 숙지하느라 바빴다.
배우들에게 있어 이 작품의 매력은 무대에 오르는 모든 고양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팬텀 역으로 전 세계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2,500차례 이상 올랐던 리틀은 모든 젤리클 고양이가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중압감을 벗어던진데 안도감을 느꼈다. “주인공이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 줄 아세요.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앉아 직접 분장한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 기대돼요. 주인공 드레스룸도 없고 우린 그냥 한 팀, 한 종족일 뿐이에요. 내가 어떤 순간에 빛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모두가 빛나는 공연이니까요.”
뮤지컬 ‘캣츠’는 1981년 초연 이후 전 세계 30개 국가에서 9,000회 이상 공연한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예전 공연과 확연히 다르다. 리차드슨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버전으로 2014년 말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12년 만에 선보인 리바이벌 버전을 바탕으로 호주, 유럽, 중동 등 여러 지역 버전의 장점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외형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것은 캣츠의 대표 넘버 ‘메모리’를 부르는 그리자벨라다. 과거에는 빛바랜 노란색 곱슬머리에 회색 옷을 입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긴 생머리에 눈매를 강조한 메이크업으로 변신한다. 캐릭터 컨셉트도 수정됐다. 로라는 ”예전에는 늙고 병든 이미지였다면 이번 버전에선 인기와 명성 속에 무너졌던 팝스타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떠올리며 연기하라고 주문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관객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국내 관객의 특징으로 윌은 “섬세한 관찰력” 로라가 ”높은 수준”을 꼽자 오랜 기간 국내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답게 리틀은 ”여러 번 관람하는 게 특징”이라고 보탰다. “수준 높은 관객들인 만큼 고양이들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리차드슨은 “캣츠의 고양이들은 성격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데 처음에는 나와 다른 사람, 나이 든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리틀이 맡은 올드 듀터러노미를 통해 다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며 “우리가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교훈을 얻듯이 관객들도 나와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캣츠를 제대로 즐기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에밋이 “처음 본 관객은 외형적인 것에 집중하겠지만 2~3번 이상 보기 시작하면 캐릭터 하나 하나의 스토리와 성격, 동작에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하자, 리틀은 “고양이들의 대사는 모두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 T.S. 엘리엇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서 나온 것이라 대사 하나하나가 아름다우니 내용을 이해하고 보면 더욱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7월11일~9월1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