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 ‘펀치’ 등 묵직한 작품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의 신작이었던 ‘귓속말’은 법률회사 태백을 배경으로, 적에서 동지로 그리고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남녀가 인생과 목숨을 건 사랑을 통해 법비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귓속말’에서 권율은 ‘법비’ 강정일을 연기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작은 악을 덮기 위해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강정일은 결국 자신의 저지른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강정일의 결말은 안방극장에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그 이유는 반성보다는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교도소 안에서도 훗날을 도모하며 성실하게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악은 성실하다”고 말하던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 분)의 말을 몸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에 “‘귓속말’ 시즌2는 강정일을 주인공으로 하는 복수극이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이어지기도 했다.
“강정일은 끝까지 자신의 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의 삶에 대해 뉘우치고 반성을 하는 시간이 있었을지언정, 강정일은 그것을 마음에 두고 다시 목표로 세워나갈 인물이다. 강정일을 주인공으로 시즌2가 그려진다면…법무법인 보국을 시작으로, 무너진 사람들이 삶을 회복하기 위해,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향한 복수 아닌 복수극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권율은 박경수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정말 많이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대사에 허튼 글과 허튼 신은 없다”고 말한 권율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대사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곱씹게 되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연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생각하게 됐다. 마치 세익스피어를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접근을 했던 것 같다. 전체적인 톤부터 시작해서 디테일한 감정 하나하나, 진짜 뜯어 분석하듯이 연기를 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우면서도 굉장히 공부가 되는 작업이자 시간이었다.”
권율에게 재미있는 점이 있다. 데뷔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흔한 열애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설마 10년간 진짜로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이냐고 놀라자, 권율은 웃으면서 “10년간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영화 ‘명량’ 이후로는 진짜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이유는 연기로서 대중과 만나고 싶었던 마음, 일에 대한 강렬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기적인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언젠가는 캐릭터보다 제가 먼저 보이는 시기가 오겠지만, 최대한 오롯이 캐릭터 적인 모습을 먼저 더 보여주고 싶었다. ‘저 사람이 그 때 그 사람이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실제로 저는 그런 배우를 볼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저 얼굴로 어떻게 연기할지 뻔히 알겠어’가 아니라 ‘저 사람이 저런 면이 있었어?’라는 느낌이 들 만큼 그런 배우가 되고 싶었고, 이를 목표로 열심히 달려왔다.”
결국 권율에게 있어 일, 연기가 연애보다 먼저였다는 것이다. 연기에 매진해 온 권율은 대기만성 형이다.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역에서부터 차근차근 자신이 맡은 바를 소화해 오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한 권율이지만 쉼 없이 달려온 10년이라는 시간 속 힘들었던 시간 또한 분명하게 존재했었다.
“조급하고 불안한 시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내게도 언젠가 ‘타이밍’이라는 것이 올 것이라고 믿었기에 힘들었던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현재 한류스타의 길을 걷는 배우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길이 있고, 나는 나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내 배우인생을 바둑과도 같다고 봤다. 바둑은 빨리 집을 형성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올 한 수 한 수까지 멀리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언젠가는 ‘배우인생’라는 바둑을 이길 뿐 아니라, 좋은 바둑을 뒀다는 평을 들을 날을 기다리며, 힘든 시기를 지내왔던 것 같다.”
권율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부모님은 제가 배우가 된다고 말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은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단 한 번도 저의 길을 의심하지 않으셨다.”
또 다른 원동력은 자신과 절친한 관계인 배우 윤계상의 격려였다. “힘든 시기를 함께했던 계상이 형이 제 스스로 포기하지 않게끔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한 권율은 윤계상에 대해 언급했다.
“계상이형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포기’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내게 ‘분명히 기회가 올 거야’고 말해 주었다. 계상이 형의 격려 덕분에 ‘난 분명히 될 거야’라는 자기 최면을 걸 수 있었고, 이 같은 믿음은 연기에 자양분이 됐으며, 긍정적인 변화를 주었다.”
권율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권율이 있었다고 고백을 하면서, 지나간 힘듦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내가 그때 이런 시기가 아니었으면, 더 늦게 깨달았을 법한 것이 많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철이 없고 흔들릴 때가 많은데, 만약 그 때의 어려움이 없다면 더 철이 없었을 것 같다. 무명의 시간들은 제가 일을 함에 있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원동력과 같다.”
힘든 시기를 거쳐 왔던 권율에게 있어 자신이 하는 작품은 모두 ‘마지막 기회’와 같았으며, 이는 그가 연기함에 있어 원동력이 돼 주었다.
“제가 연기할 수 있는 무대와 장은 언제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달려든다. 그렇기에 작은 것마저 놓치고 싶지 않다. 연기에 대한 절실함, 그것이 내 연기에 연관이 되고 삶이 되는 것 같다. 저는 방송으로 확인했을 때 ‘내가 저때 왜 집중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다. 더 노력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남기는 것이 가장 두렵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권율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이유는 좋은 사람이 결국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권율은 “훗날 누군가에게 멘토의 역할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분명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보여주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율이라는 배우에 대해 익숙해지는 시기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또 넓히기 위해 꾸준히 예술적인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제 주변에 좋은 동료 배우들도 많고 좋은 영화들도 보고, 좋은 책들을 보면서 영감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영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꾸준하게 교류를 하면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제가 걸어온 시행착오를 알려주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조력자, 멘토가 됐으면 한다.(웃음)”
누군가의 멘토가 되기 위해서 권율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 나가고 있다. 권율은 “내 한 마디가 많은 영향을 주고 소중히 쓰일 수 있도록 공신력을 더 많이 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면서 “그러기 위해 다시 한 번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웃으며 다짐했다.
“더 좋은 필모그래피와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나의 삶을 살짝 이야기 했을 때 믿고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우선인 것 같다.”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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