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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전략원잠 & SLBM





1959년 6월 9일, 미국 코네티컷주 그로턴 조선소. 검은색 잠수함 한 척이 드라이독을 빠져나왔다. 최초의 본격 전략 원자력 잠수함 조지 워싱턴 호의 진수 순간이다. 조지 워싱턴호는 미 해군의 이전 잠수함들과 크게 달랐다. 우선 덩치가 컸다. 길이 116m. 잠수함으로는 처음으로 전장 100m를 넘어섰다. 수중 배수량 역시 6,817t으로 최대였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호는 애초부터 전략원잠(SSBN)으로 설계된 함정은 아니었다. 한창 건조 중이던 다른 잠수함을 급하게 용도 변경한 함정이었다. 건조 기간도 모두 합쳐 불과 7개월. 강재 절단에서 진수까지 3~4년 걸리는 요즘 전략원잠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짧았다.

원형은 스킵잭(Skipjack)급 고속 공격원잠(SSN). 조지 워싱턴호보다 1년여 앞서 선보인 스킵잭 공격원잠 역시 혁신적인 잠수함이었다. 미 해군에서는 처음으로 눈물방울(tear drop)형 선체 디자인을 채택해 수중 활동성을 높였다. 수중 최고 속도 33노트로 어떤 잠수함보다 빨랐다. 수중 배수량 3,569t에 길이 77m인 스킵잭급은 모두 6척이 건조됐지만 도중에 설계 변경된 잠수함이 두 척 있었다. 조지 워싱턴호는 건조 중이던 스킵잭급을 급하게 개조한 잠수함이었다. 개조 포인트는 선체 연장. 전장을 39m 늘렸다. 잠수함 발사 대륙간탄도탄(SLBM) 발사관 16기를 탑재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모두 5척)의 2번 함인 패트릭 헨리호도 애초에는 스킵잭급으로 건조 준비 중이던 잠수함이었다. 미 해군이 급하게 서둔 이유는 무엇일까. 소련의 미사일 전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대전의 동맹국이었지만 종전 이후 가상적으로 바뀐 소련의 전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전략무기라고 해야 확실한 수단은 장거리 폭격기 밖에 없던 시절, 소련은 미국의 B-29 폭격기에 비견할만한 기종이 없었다. 소련에 불시착한 B-29 3대를 뜯어가며 역설계, 불법 복제한 짝퉁 B-29에 ‘Tu-4’ 라는 제식명을 붙여 수십대 배치했어도 미국과는 상대가 안됐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1953년)과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1957년) 성공으로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폭격기 세력은 절대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련이 수소폭탄을 인공위성 발사체에 탑재해 공격할 경우,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경우 미국과 소련 간 전력 우위가 역전될 것이라며 떨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일각에서는 소련의 ICBM 기술 수준이 낮아 큰 위협이 될 수 없다는 보고를 올렸지만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 당했다. 정성화 명지대 교수(사학과)의 연구 논문 ‘미국의 대소련 핵정책: 트루만, 아이젠하워 시대’에 따르면 “아이젠하워의 (미온적인) 군사정책은 하바드, 예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등 주요 대학과 랜드연구소의 지식인들과 방위산업체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이들은 각종 보고서와 언론을 통해 핵 전력 강화 필요성을 광범위하게 선전하고 의회에 핵무기 증산 압력을 넣었다. 소련이 사거리 150~6,000마일에 이르는 미사일 약 2만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달 15발의 신형 ICBM을 생산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실상은 달랐다. 정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소련은 1960년대 말까지 미국에 위협적인 ICBM을 배치하지 못했음에도 미국은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며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방향은 ICBM과 SLBM 두 가지. 특히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소련 근해까지 접근시켜 발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2차 대전에서 독일이 선보인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V2 로켓을 모방해 핵 미사일부터 생산해 잠수함에 탑재했으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다에 떠올라야만 발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부상한 다음 연료를 주입하고, 발사까지 소요되는 30분 동안 잠수함의 최대 장점인 은닉성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최초의 본격 전략원잠 조지 워싱턴호는 이런 문제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잠수함 전용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먼저 개발하고 조지 워싱턴호를 건조한 미국은 1960년 10월 해수면 아래에서 SLBM 발사에 성공, 전략원잠 시대를 열었다. 실험 성공에 고무된 미국은 전략 원잠 함대를 만들었다. 조지 워싱턴급 5척, 이선 앨런급 5척, 라파예트급 9척, 제임스 메디슨급 10척, 벤저민 프랭클린급 12척 등 전략원잠 41척을 건조, ‘자유를 위한 41척 함대(41 for freedom)’라는 이름을 붙이고 장거리 폭격기, ICBM과 더불어 3대 핵전력의 하나로 삼았다.

주목할 대목은 미국이 41척의 전략 원잠을 건조하고 배치하는 데 불과 7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 짧은 기간이지만 미국은 조금씩 성능을 개선하고 크기를 키웠다. 벤저민 프랭클린급의 수중 배수량은 8,383t으로 조지 워싱턴급보다 2,000t 가량 더 나갔다. 탑재 미사일 성능 발전 속도는 더욱 빨랐다. 조지 워싱턴급의 1·2번 함은 폴라리스 A1형을 탑재했으나 3번함 이후부터 사거리가 늘어난 A2형을 실었다. 41척의 전략원잠들은 미사일 하나에 여러 탄두를 실을 수 있는 A3 미사일, 트라이던트, 포세이돈 미사일로 무장을 바꿨다. 미국의 전략 원잠은 군축에 따라 오늘날 14척이 운용되고 있으나 전력은 러시아와 중국을 커버할 수 있는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냉전 시기, 미국의 SLBM 함대는 경쟁자 소련에게 자극을 줬다. 1971년께 소련 해군은 50척 이상의 SLBM 탑재 잠수함을 거느렸다. 결국 경쟁 속에 균형이 잡혔다. 미소 양국이 선제공격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어느 바다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SLBM의 존재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현재는 사정이 다르다. SLBM의 절대 강자는 미국만 남았다. 사정거리 1만㎞가 넘는 SLBM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뿐이다. 자국 연안에서 어디든 겨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한기당 3,090만달러인 SLBM을 336기나 배치하고 있다. 미사일 하나에 자탄 최대 12개까지 탑재가 가능하다.

인간의 욕심과 시기심은 끝이 없는지 미국 SLBM의 살상력만으로도 인류가 멸망에 이를 수 있는데도 새로운 SLBM이 속속 나온다. 러시아와 중국이 신형 핵잠과 미사일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인도까지 끼어들었다. SLBM이 지구촌 핵 시계의 태엽을 다시 감고 있는 형국에 북한마저 SLBM을 들고 나왔다. 북한의 SLBM과 신포급 잠수함의 성능은 최초 전략원잠 조지 워싱턴호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조지 워싱턴호가 훨씬 강하다. 조지 워싱턴호에 비하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북한 SLBM의 위협이 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58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에도 위기를 과장하는 습성이 여전하다. 미국은 북한 SLBM과 핵무기를 동북아의 집단안보 체제 구축과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듯 재무장의 핑계로 써먹는다. 위기 과장이 통할 만큼 잠수함의 존재는 치명적이다. 한정된 국방예산으로 북한에 대응함은 물론 경제규모에 적절한 국방력을 갖추지 위해 원자력 추진 잠수함만큼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무기체계도 없다. SLBM을 탑재하지 않더라도 원잠은 잠항 가능 시간이 긴 만큼 효과가 크다 .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능력을 갖고 있다. 대비가 필요하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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