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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은정, ‘둥글게 둥글게’...연극 무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배우

“연극 ‘킬미나우’...볼 때마다 더 슬퍼져”

“객석에서 관객으로 연극을 볼 때보다, 대본이 더 슬퍼요. 무슨 이런 작품이 다 있을까요? 시나리오를 한 두 번 읽고 나면 그런 감흥이 잦아들어야 하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배우에겐 그게 자극이 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해요”

‘미생’, ‘솔로몬의 위증’, ‘역적’ , ‘도둑놈, 도둑님’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1998년 SBS 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우 신은정이 생애 첫 연극 무대에 도전했다.

배우 신은정이 연극열전이 제작하는 연극 ‘킬 미 나우’로 생애 첫 연극 도전을 했다./사진=조은정 기자




캐나다의 대표적인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 원작을 오경택이 연출하고 지이선이 각색한 연극 ‘킬 미 나우’는 장애아 조이의 성장과 독립문제에 대한 갈등을 통해 장애아와 장애아를 키우는 가정의 삶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장애인 가족과 안락사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로 인해 접근하기 쉽지 않을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객석에선 공감의 웃음과 눈물이 가득하다. 6월의 추천 연극이란 입소문은 계속 이어지고 중. ‘킬 미 나우’를 너무도 좋아했던 관객에서 배우로 무대에 서게 된 신은정 역시 “너무 좋은 연극이라 지난 초연 때 3번 이상을 보러 왔었다”며 눈빛을 빛냈다.

“제이크 역을 맡은 (이)석준 오빠가 대학교 선배라 선배가 하는 연극을 자주 보러갔었어요. 처음엔 석준 선배 공연을 보러갔다가 거기 출연하는 윤나무, 이진희, 이지현 등 모든 배우들에게 반해서 팬이 됐어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너무 커 보이고 존경스러웠어요. 그러던 중에 연극 제안이 들어와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 새내기 연극 배우가 된 신은정...살아 있는 기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신은정은 그렇게 선배 이석준, 동기 이승준이 더블 캐스팅 된 제이크의 연인 ‘로빈’ 으로 살아오고 있다. 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SBS 7기 공채 탤런트가 된 신은정은 계속 방송 쪽에 몸을 담게 된다. 연극 무대에 서는 동기들과 선배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는 “나도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다”고 했다.

20 년 만에 다시 새내기 연극 배우가 된 신은정은 ‘킬 미 나우’ 첫 대본 연습 날,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고 말하며 열의를 내보였다고 한다.

“다시 새내기 배우가 된다고 하니, 되게 설레고 그렇더라구요. 나이 44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스무살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대본을 가지고 치열하게 이야기하고 의견 나누고 하는 게 너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동료 배우들에게도 ‘이 감정 살아있는 것 같아’ 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나요.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첫 연극이고 이것에만 집중을 하고 싶었어요. ”

연극 ‘킬 미 나우’ 한 장면 /사진=연극열전


/사진=연극열전


신은정이 분한 ‘로빈’ 역은 한 때 촉망 받는 젊은 작가였으나, 아내와 사별한 후 장애를 가진 아들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꿈을 포기한 ‘제이크’(이석준, 이승준 분)의 연인이자, 아마추어 작가로 제이크를 글쓰기 수업에서 만나 12년간 남몰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주요 인물이다. 특히, 내면에 깊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여인 로빈은 제이크를 통해 위안을 받고, 상대에게 역시 위로를 안긴다. 반면 연극 속 비중으로 봤을 땐 존재감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관객인)저에게는 로빈이 보였는데, 처음 봤을 땐 조이와 제이크에게 더 눈길이 갈 수 있어요. 전 로빈이란 인물이 도드라져 보이기보다는 인물들의 아픔이 잘 녹여져 있으면 했어요. 자신에게 소원한 남편 그리고 아이마저도 엄마에게 관심을 끊었다는 대사들이 있어요. 이 여자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자기 생활을 준비했던 여자라면 모르겠는데, 굉장히 외로웠겠죠. 결혼을 한 40대 여자들이라면 저 여자 이야기가 뭔가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듯 해요.”

연기의 조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신은정은 ‘관객마다 어떤 날은 저 인물의 감정에 마음이 동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다른 인물에 끌리기도 할 것이다’며 작품 전체의 매력을 봐 줄 것을 당부했다.

“저희 작품을 좋아해주는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어느 배우 하나 놓치지 않게 보여서 좋았다’고 했어요. 어떤 배우가 내가 더 보이고 싶어서 뭔가를 한다면, ‘킬 미 나우’ 작품이 가지고 있는 게 조금씩 틀어지게 되더라구요. 배우의 욕심으로 작품을 망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게다가 극에 집중하다보면 욕심 같은 건 내려놓게 됩니다. 관객들한테 제이크와 로빈의 불륜이란 시각 보다는 저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로빈의 아픔이 잘 전달되는 마음이 커요.”

배우 신은정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둥글게 둥글게’ 23년차 배우 신은정의 연기 내공

23년 차 배우 신은정의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편안함을 안긴다. 어떤 역이든 진심으로 표현해 마음으로 와 닿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려심 있고 따뜻한 성격이 그의 연기에 묻어난다. 인간 신은정과 배우 신은정 사이의 갭은 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의 좌우명은 ‘둥글게 둥글게’이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욱 이해됐다.



“제 좌우명이 유치하죠. 호호. 뭐든지 둥글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살다보면 고민해야 하는 게 많고, 삐죽 삐죽 모난 사람도 많잖아요. 전 어떻게든 ‘둥글게 둥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얼마 전에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가훈을 알아오라고 했는데, ‘둥글게 둥글게’ 라고 차마 말 못하고, 조금 포장해서 ‘긍정의 힘을 믿자’고 말했어요.”

신은정은 20대 ‘깡순이’란 별명이 생겼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몰랐던 시기를 지나 이제 고민해야 할 게 더 많아진 40대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두려움은 없지만 꾀부리지 않고 더욱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라고 한다. 연극 무대 도전은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사실 연극을 시작할 때 각오를 하고 덤볐어요. 진짜 내 연기의 바닥이 보일 수도 있고, 내 한계를 느끼고 괴로워도 하겠구나.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고 시작 했던 것 같아요. 직접 부딪쳐보니 그런 부분들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연기란 게 누구나 그렇겠지만 만족을 느낄 수 없어요. 무엇보다 정답이 없잖아요. 얼마나 재미를 느끼고 하느냐가 다른 것 같아요.”

◇ 믿고 작업하는 배우에서▶ 무대에서 계속 보고 싶은 배우로

남편 박성웅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존재하는 인간 신은정은 하나지만, 배우 신은정으로는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다. 최근 들어 인자한 어머니 역을 주로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국민 악녀로 이름을 날렸던 그다. 2004년 채시라 이종원 등이 출연한 kbs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 출연하며 ‘모든 여자의 적’으로 등극했던 그는 “악역을 안 했을거라 생각하는데, 저도 악역을 했어요.”라며 특별한 일화를 들려줬다.

“‘애정의 조건’에 출연하면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평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몇 차례 저를 지켜본 분이 저에게 ‘성격 좋으시네요’ 라고 말 했을 정도니까요. 사실 전 그게 너무 재미있고 좋던걸요. 온전하게 인물로 절 봐주신거잖아요.”

배우 신은정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악역을 표현한다는 게 사실 배우 스스로에겐 재미있는 게 많아요. 어릴 때는 대본이 나오면 ‘내가 맡은 이 인물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지?’ 라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어요. 지금은 악역을 하게 되면 이걸 ‘어떻게 하면 더 재수가 없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서늘해질까? 더 토 나오게 할까? ’그걸 연구하게 되니까 악역이 재미있어요. 악역을 하든 선한 역을 하든, 바보 같은 역을 하든 잘 녹아들어서 가식 없이 진심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은 같아요.”

잔잔하게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배우 신은정과의 대화는 편안함이 가득했다. 신은정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 뿐 아니라, 동료 배우들이 믿고 작업할 수 있는 배우라는 점. 배우들끼리의 신뢰는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돼 있었다.

“배우가 딴 거 있나요? 본업인 연기를 잘 해야죠. 전 어떤 칭호보다도,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 그리고 관객들이 믿고 보는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상대배우를 믿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불안한 작품이 되는 거죠. 함께하는 배우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갈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배우들끼리 믿을 수 있는 배우라면, 그런 신뢰감이 관객들에게도 전달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무대가 잘 어울리는 배우 신은정은 “앞으로도 연극을 계속 경험하고 싶다”고 바랐다. 그런 그녀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칭찬은 “무대에서 계속 봤으면 좋겠어요”라는 관객들의 평이다.

“되게 감사했던 거 공연 끝나고 몇몇 관객들이 ‘무대에서 계속 봤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말이 너무 감사한 말이었어요. 인상이 남는 말이었어요. 정말 연극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이번에 연극 시작할 때 쯤 2~3군데에서 연극 제안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불러주시는 게 감사하죠. 그래도 저만 좋아서 되나요? 그래서 이번 작품 하는 것 보고 마음에 드시면 연락 주세요라고 전했어요. 내가 꾸준히 연극을 해온 사람처럼 잘 해내고 싶어요. 무엇보다 전 연극을 계속 할 겁니다.”

한편, 연극열전의 두 번째 작품, 연극 ‘킬 미 나우’는 7월 3일까지 충무 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관객과 만난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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