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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헬무트 콜의 유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직후인 1989년 12월19일. 동독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 집회에 모인 동독 주민들이 연단에 오른 헬무트 콜 서독 총리를 향해 “헬무트, 헬무트”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콜은 동독의 최대 낙후 지역이던 이곳에서 ‘독일 통일의 주인은 바로 독일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독일 통일작업에 가속도를 붙이게 됐다. 그로부터 사흘 뒤 콜은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다시 개방하면서 국민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가 훗날 믿기지 않은 ‘기적’이자 ‘생애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던 순간이었다.

독일이 주변 강대국들의 반대를 뚫고 조기 통일을 이룬 데는 콜의 공로가 절대적이다. 콜은 ‘하나의 강한 독일’을 경계하는 유럽 각국이나 러시아를 설득해 통일을 실현해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결단하는 승부사적 기질이 빛을 발한 것이다. 콜은 초기만 해도 점진적 통일방안을 제시했지만 ‘서독 마르크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로 갈 것’이라는 동독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가 ‘통일의 아버지’에 머무르지 않고 통합 유럽의 지도자로 불리게 된 것도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평소 소신을 과단성 있게 밀어붙인 덕택일 것이다.



콜은 시중에 떠도는 유머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몸무게를 제대로 모른다는 120㎏을 웃도는 거구인데다 말주변이 워낙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슈바인(돼지)’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유머집 ‘콜 총리의 웃음’이 출간될 정도였다. 그는 역대 최장인 16년간 총리직을 수행했지만 통일 후에는 옛 동독 경제가 급속히 피폐화되고 무리한 증세정책으로 인해 국민의 지지를 잃어 정권을 내놓아야만 했다.

콜 전 총리가 16일(현지시간) 루드비히스하펜 자택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그는 화려했던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에는 통일 후유증으로 인기가 점점 떨어진데다 기독민주당의 정치자금 부패사건까지 겹쳐 정계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평생 매달렸던 독일 통일이 오히려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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