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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으로 생색...황당한 금속노조

통상임금 소송금으로 현대차에 5,000억 일자리기금 제안

기득권 내려놓기는 커녕 새정부 정책 편승 '꼼수'

전국금속노동조합 집행부가 20일 서울 중구 노조 회의실에서 현대자동차그룹에 노사 공동 일자리 연대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이 현대자동차그룹에 5,000억원 규모의 ‘일자리연대기금’을 공동 조성하자고 제의한 데 대해 비판이 거세다. 과도한 임금인상과 고용보호로 비정규직과의 격차 확대에 원인을 제공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놓기는커녕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 기조에 편승해 생색을 낸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실체가 없는 돈으로 기업 측에 매칭펀드 조성을 요구한 것은 ‘사기(詐欺)’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속노조는 20일 서울 정동 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기아자동차에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기금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17곳의 정규직 근로자 통상임금 소송 금액에서 약 2,500억원을 내놓고 회사가 같은 금액을 보태 조성하는 방식이다. 이어 매년 임금·단체협상 타결로 발생하는 임금인상분에서 해마다 노사가 100억원씩 추가로 적립하자고 했다. 금속노조는 초기 기금 5,000억원만 마련되면 연봉 4,000만원 수준의 정규직 1만2,000명을 고용할 수 있고 매년 적립되는 200억원으로는 새 정부 일자리정책과 연계해 매년 정규직 1,500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경제계와 학계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꼼수’라고 평가절하했다. 과도한 보호와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의 연대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통 큰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남의 돈으로 생색만 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가파른 임금 상승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규직 노조의 자기 희생이 먼저”라며 “정규직 노조가 양보하지 않고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무엇보다 금속노조가 제안한 일자리연대기금의 실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기금 재원은 현대·기아차와 노조 간에 진행되고 있는 통상임금 소송 관련 금액이다. 현대차는 현재 통상임금 소송에서 2심까지 승소했고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은 아직 1심이 진행되고 있다.



금속노조의 제안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이 뒤집힌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며 5,000억원의 기금을 모두 현대차그룹에서 부담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리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2심까지 지고 있어 확보되지 않은 금품으로 기금을 조성하자고 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조건”이라며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진정성을 보이려면 향후 5년간 임금인상을 자제하거나 기존에 승소해 확보한 통상임금채권을 내놓는다는 등의 자기 희생이 먼저”라고 꼬집었다.

특히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은 조합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금속노조는 이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실제로 기아차노조는 올해 임금요구안을 확정할 때 내부 토론 끝에 연대기금 조성 부분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령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채권을 연대기금으로 내놓자고 했어도 현장 조합원들이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금속노조의 이번 제안은 노사협상 때 현대차그룹의 공동교섭 참여를 유도하고 통상임금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친노동적인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편승해 이번 금속노조의 제안처럼 노동계가 비합리적인 요구를 계속 내놓을 경우 자칫 일자리를 줄이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임금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실시하면 30% 안팎의 임금인상 요인이 발생하는데 국내 기업들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기득권 노조의 양보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거나 일자리가 늘어나기는커녕 실업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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