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업에 걸쳐 ‘시장조사’는 필수다. 고객과 시장을 이해하는 것은 경쟁력 있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트렌드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시즌이라는 한시성에 쫓기는 패션 사업에서 시장조사는 고객과의 접점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현재 어떠한 종류의 스타일과 색상의 옷을 주로 입는가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최단 6개월 후에 보여줄 상품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일반 공산품은 기존 상품의 생산과 재고를 조절하며 신상품 출고가 가능하지만 패션 의류의 경우 기존 상품의 판매 결과와 관계없이 계절에 따라 신상품을 출시해야 한다. 따라서 패션인들은 정확한 트렌드 예측에 기초한 상품 제시를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과거 20년 전 시장조사를 할 때의 일이다. 대학가 앞의 2층 커피숍에서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몇 시간에 걸쳐 골목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착장 사진을 찍었다. 수백 명이 찍힌 인화된 사진에서 착장 스타일 유형을 분석해 데이터로 직접 만들었다. 당시에는 백화점 수도 현재처럼 많지 않아 직접 거리의 잠재 고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것이 더 빨랐다.
이제는 디지털 사진기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자료를 공유하며 브랜드마다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의 상품 정보를 앞다퉈 제공한다. 이러한 트렌드를 분석하고 빅데이터를 제시하는 전문 서비스 업체들도 많아져 적확한 예측이 가능하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 패션인들은 현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예전처럼 브랜드마다 타깃층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습관적으로 둘러본다. 매장에 걸려 있는 상품보다는 소비자에게 직접 선택을 받은 상품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패션인들은 대학가로 쇼핑몰로 산으로 골프장으로 향한다. 현장에서 어떤 연령대의 고객이 이곳에 오기 위해 어떤 옷을 선택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다.
대학생들의 ‘과잠(과별로 맞춘 야구 점퍼)’ 유행을 뉴스로 접할 즈음 최고위 과정을 수강하게 된 대학 캠퍼스에서 젊은 학생들의 착장을 볼 기회가 생겼다. 기사가 과장이 아니라는 듯 수많은 학생이 야구 점퍼 스타일에 자수로 학교 로고와 학과명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삼삼오오 캠퍼스를 오갔다. 교정에 들어와보지 않으면 보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학생들이 어떤 의류를 입고 있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직접 파악할 수 없던 트렌드였을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 브랜드의 착장이 보인다.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현장을 보고 느끼며 믿음을 가지고 희망 가득한 다음 시즌을 또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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