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는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베테랑’으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에 천만배우 황정민과 한류스타 소지섭·송중기의 만남, 순제작비 220억 원 등 ‘역대급 규모’ 때문. 화룡점정은 영화의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사투를 담아내며 한국인들의 한의 정서를 건드린다.
이처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순항하던 ‘군함도’에 논란의 씨앗이 뿌려졌다. 지난 24일 자신을 ‘군함도’의 보조출연자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의 글이었다. 글의 정황상 한국인 인부로 출연한 38명의 배우 중 한 명으로 추측되는 그는 “이 영화를 찍고 류승완 감독 영화는 다신 안보리라 다짐했다”고 첫 머리부터 강한 어조로 시작했다.
‘군함도’ 시나리오처럼 촬영 현장이 배우들의 강제징용 현장이었다는 게 골자였다. 배우들은 촬영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했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출연료를 받았다는 것. 여기에 보조출연자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있었다고 덧붙이면서 ‘애국심 마케팅하는 거 정말 별로다. 영화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감정을 드러냈다.
구체적인 인증이 없는 만큼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는 글이었다. 그러나 촬영 현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군함도’의 화제성이 맞물리면서 해당 글은 순식간에 여러 사이트로 퍼져나갔다. 실제 영화 촬영 현장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는 것도 논란이 퍼지는데 한 몫 했다.
‘군함도’ 제작사 외유내강 측은 다음 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전체 115회 차 촬영 중 12시간이 넘는 촬영은 5회 미만이었으며 부득이한 추가 촬영의 경우 충분히 사전 양해를 구했다”며 “모든 스태프와 출연자를 대상으로 계약을 체결했으며 초과 촬영 시에는 추가 임금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사건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노동착취’와 ‘차별대우’는 영화계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주제. 순풍에 돛 단 듯 흥행을 향해 달리던 ‘군함도’에게 암초와도 같은 일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지난 2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군함도’ 쇼케이스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해당 글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충분히 의식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변명은 없었다. 보조출연자들의 노고에 대한 존경심과 미안함을 전하면서 논란을 돌파하고자 했다.
류 감도은 우선 “1940년대 당시 사진을 보면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까지 굉장히 앙상하다. 전쟁시기의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장소부터 의상, 분장까지 모두 험했다”며 촬영 현장을 설명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출연자와 스태프 모두가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어 “저 뒤에 점처럼 보이는 인물도 모두 엑스트라가 아닌 보조출연자라고 표현했다. 연기해주신 분들을 세보니까 7000분이 넘더라”며 “조선인 징용자 역을 맡은 배우 중에 70회 차 넘게 출연한 분도 있다. 그렇게 끝까지 출연한 사람이 38명이더라. 제가 촬영 끝나고 ‘너희들이 없었으면 끝까지 못 왔다’고 말했다”고 고마운 마음을 덧붙였다.
더불어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혹독한 과정에서 제가 조금 더 편한 환경을 제공했으면 좋았겠지만, 워낙 힘든 환경이어서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견뎌주시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 출연자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글 말미에 등장했던 ‘애국심 마케팅’에 대해서도 류 감독은 할 말이 있었다. 그는 “영화의 목적은 군함도를 고발하고 폭로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한 장의 군함도 사진에서 순수하게 시작됐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역사를 자극적인 소재로 활용한, 일종의 선전이나 선동하는 영화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고 경계했던 지점을 설명했다.
더불어 “민족주의 감정을 건드려서 흥행하고 싶지 않다”며 “역사 속의 개인에 중점을 뒀다. 역사의 흐름과 개인이 만나서 충돌할 때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수많은 전쟁영화들에 그런 매력이 있었다.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박진감과 긴장감 등 개성 강한 영화적인 체험이 제일 중요했다”고 말했다. 애국심 등 감성적인 면과는 별개로 영화적인 재미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
물론 모든 논란이 깨끗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보조출연자의 처우에 관해서는 계약서로 증명했지만, 배우들 사이 차별대우 문제는 개운하게 해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영화의 설정상, 실제 촬영 현장은 배우들도 입을 모았듯이 힘들었던 게 맞다. 애국심 마케팅도 영화가 개봉한 뒤 다시 살펴볼 문제다.
그렇기에 정면 돌파가 더욱 의미 있었다. ‘군함도’ 측은 한 사람의 목소리일지라도 외면하지 않았다. 글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해명할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명하고, 명확한 대상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함으로써 진정성을 얻게 됐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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