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구글에 거액의 과징금 폭탄을 내리면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에서 ‘EU 경계령’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애플과 페이스북 등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대한 EU의 고강도 과징금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구글에 대해서도 시장 예상치의 두 배에 달하는 무거운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EU 경쟁 당국이 미 IT 업계와의 대립각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EU의 이 같은 강경 노선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정면 충돌하는 것으로 자칫 미·EU 간 통상마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U 집행위원회는 27일(현지시간) “구글이 온라인 검색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쇼핑 비교 서비스 등 자회사에 혜택을 부여했다”고 지적하며 24억2,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90일 이내에 개선 조치를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만일 구글이 기한 내에 개선안을 내놓지 않으면 모회사인 알파벳의 하루 매출액의 5%에 해당하는 1,400만달러(159억원)의 추가 과징금을 내야 한다.
‘미국 기업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사진)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구글이 한 행위는 EU 반독점법 위반”이라고 못 박으며 “구글은 다른 기업들이 각자의 강점으로 경쟁하고 혁신할 기회를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유럽 소비자들이 시장 경쟁을 통해 정당하게 선택할 권리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EU가 구글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3건의 반독점 위반 사례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온 것으로 이번 결정이 다른 사안에 대한 거액의 추가 과징금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는 현재 이 건 외에도 구글의 광고서비스와 안드로이드 휴대폰 소프트웨어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 혐의도 조사 중이다. 구글이 EU의 발표 후 즉각 불복 의사를 밝히며 법원 제소 방침을 시사한 것도 연쇄적인 EU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미국 대표 IT 기업을 겨냥한 EU의 공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EU 집행위는 지난해 8월 아일랜드에 유럽본부를 둔 애플에 대해 법인세 미납을 이유로 130억유로(16조6,000억원)의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지난달에는 페이스북에 2014년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1억1,000만유로의 벌금을 매겼다. 이 밖에도 스타벅스와 아마존·맥도날드 등이 EU의 조사대상 목록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EU가 미국 기업들에 향해 날을 세우는 것이 자국 산업을 지키겠다며 강력한 보호무역조치를 예고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과 함께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EU의 잇단 과징금 부과가 양측의 무역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안보에 위해가 된다며 유럽산 철강에 대해 관세 폭탄을 투하할 경우 EU가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며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EU 관계가 경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이 미국으로부터 예민한 반응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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