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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思父曲(사부곡)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일제강점, 6·25 동란 역경에도

한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바쳐

어르신 희생 위에 쓴 전진의 역사

반칙·부정 낙인 함부로 찍어서야





지난 6월○○일, 새벽 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우리 오남매와 그 자식들을 포함한 가족 20여명은 서울추모공원의 한 방에 모여 벽에 걸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이런 글들이 쓰여 있었다. ‘고인 성명: 김○○, 화로 번호: 05, 시간: 06:31 ~ 07:51, 진행 상태: 화장 중.’ 이틀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923년생이니 만으로 94세. 마지막 몇 년간을 여러 의료기구에 의존해 연명하기는 했으나 통상적으로는 천수를 다 누리신 셈이다.

필자가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하듯 아버지 역시 말수가 적고 엄격하기만 했던 관계로 어릴 적 필자에게 아버지란 늘 큰 산처럼 가까이 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귀국 후 바라본 지난 십수 년 동안의 아버지는 바람이 서서히 빠져나가 쪼그라들고 있는 풍선처럼 무기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필자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자식을 키우는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과거 당신의 삶은 어땠을까 헤아려보곤 했다.

돌이켜 보면 근대 들어 이분들만큼이나 고단하고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온 세대가 과연 또 있을까.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학도병으로 남양군도에 끌려가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었으며 해방 후 간신히 살아 돌아온 조국에서 또다시 6·25동란을 맞아 참전 중 총상을 입기도 했다.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을 갖고 싶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목숨 (1953)’이라는 시 마지막 부분이다. 당시 이 땅의 대다수 젊은이들은 이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와중에서 그저 살아남는 것 외의 그 어떤 꿈조차 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이분들만큼이나 위대한 세대가 있을까. 휴전 후 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수십 년을 봉직하며 그 빠듯한 봉급으로 우리 오남매를 비록 풍족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굶기지는 않으며 키우셨다.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매달 월급날이면 누런 월급봉투를 어머니께 내밀며 멋쩍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다음날부터 그동안 시장바닥에 깔아놓은 빚을 갚는 데 대부분을 쓰고 한숨짓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당시 필자의 부모님에게만 한정된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매번 도시락을 싸갈 수는 있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수업 중 집으로 돌려보내진 적은 없었으니까.



당시 이 땅의 부모님들은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자식들과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식들에게 더 풍족한 미래를 넘겨주기 위해 악바리처럼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훗날 어느 대통령은 우리의 이런 역사를 반칙과 부정이 판을 치고 그들이 승리한 부끄러운 역사로 규정지어 버렸다. 과연 그럴까. 이 아귀다툼에서 왜 사소한 반칙과 부정이 없었겠는가. 가령 김 10장을 사면 중간에 한두 장은 반 장짜리가 섞여 있기 일쑤였고 사과 한 상자를 사면 대충 밑에는 썩은 사과가 들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커다란 반칙과 부정을 저지른 자들도 꽤 있었으며 이들은 반드시 색출되고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 시대 우리의 역사는 분명 전진의 역사였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평범한 우리 부모님 세대의 피땀 어린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역사인식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경우 아버지 살아생전에 서로 겸연쩍어질까 봐 한 번도 직접 해드리지 못한 말이 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염을 할 때 화장 후 한 줌의 재로 한결 가벼워진 아버지를 안고 납골당으로 향할 때 등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목이 메어질까 봐 차마 드리지 못한 말이 있다. “아버지, 어려운 환경에서 저희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동시대 이 땅에서 살아온 모든 어르신들께 드린다.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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