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에 이제는 지위에 걸맞은 전략적 대우를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서울경제신문 자문단인 서경 펠로(fellow)와 북한 전문가들은 5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은 미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졌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와 협상 카드를 제시하라는 압박 목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대화 분위기 조성 노력을 비난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비핵화를 위한 협상은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뒤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 설 때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연구소장은 “곧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려 북핵을 주요의제로 논의하겠지만 이제는 어떠한 제재와 압박을 가해도 변화는 없다고 시사한 것”이라며 “이제는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 갔다’는 메시지와 함께 자신들이 정한 길만 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서경 펠로인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도 “미국과 대등한 위치가 됐으니 핵 포기 등을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 기조를 이어가기로 하고 문재인 정부도 대화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한다고 밝히자 핵·미사일 고도화로 맞대응했다는 분석이다. 고 소장은 “북한이 (한국과 미국) 선거 과정에서는 도발을 자제해오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차례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마지막 남아 있었던 ICBM까지 보여준 것”이라며 “미국을 타격할 핵·미사일을 완성했고 협상 국면으로 바뀌지 않으면 핵·미사일 고도화로 양까지 늘려가겠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체제 이후 강조해온 ‘핵·경제 병진노선’을 끝까지 밀고 가 핵보유국으로서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이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를 예고했고 6개월 후 마침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보여줬고 김정은이 트럼프와 맞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적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측면이었다”며 “북한이 대화든 대결이든 모든 것이 준비돼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며 이제는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 서겠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판을 북한 스스로 끌고 가겠다고 표명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끌려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판을 끌고 가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며 “한미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국제사회가 판 자체를 바꿔 보려는 흐름을 형성하려고 하자 핵 고도화를 과시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뒤 자신들이 원하는 북핵 해법과 남북·북미관계를 설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쐐기를 박았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번 ICBM 시험발사는 트럼프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근접하게 침범한 것”이라며 “국제사회, 특히 한미가 설정한 북핵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류호·권경원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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