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음정우의 미술경매] 명승부 끝에 3억 넘자 박수갈채..고미술 부활 알린 겸재 산수화

겸재 정선 이어 단원 김홍도 등

3년간 시세 300% 가까이 급등

역사적 가치·희소성 주목받자

투자형 컬렉터·애호가 적극 매입

현장서도 투명성 강화에 온힘

겸재 정선 ‘계상야회도’, 27.1x43.5cm, 낙찰가 2억3,000만원. /사진제공=서울옥션




2016년 6월 어느 날 저녁, 평창동의 한 미술품 경매장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한 점이 치열한 경합 끝에 3억5,000만 원에 낙찰되는 순간이었다. 1억 원부터 200만원씩 호가가 붙은 경매는 현장과 전화, 그리고 서면응찰로 곧 1,000만원씩 널뛰기를 하며 2억원을 넘어서고, 순식간에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친 최후의 패들 두 개만 오르내리고 있었다. 현장응찰의 중년 부부와 수화기 너머 상황을 전달받는 전화 응찰자 간의 경합. 3억4,000만원 즈음에 어느덧 인내심의 한계점에서 서로 숨을 고르는 타이밍이 왔고, 치열했던 장내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승리를 확신했던 전화응찰자는 부인의 만류에도 마지막 패들을 집어 올린 남성 응찰자의 일격에 무너지며 결국 경매는 현장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당시 단상의 경매사로 치열한 경쟁을 지켜본 나는 근래 보기 드문 명승부를 펼친 두 응찰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현장의 축하 박수 사이에서 어리둥절해하며 어떻게 저 작은 옛 그림이 이 가격일 수 있냐는 표정들이 눈에 띄어 보란 듯이 더 크게 박수를 친 기억이 난다.

최근 10년간 경매에서 겸재 정선의 단일 작품이 낙찰가 3억원을 넘어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이 작품이 A4용지 크기였음을 감안하면 동일 사이즈의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20여년 이상 침전만 거듭했던 고미술 시장에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 결과였다. 실은 2013년 중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압류미술품에 포함되었던 고미술품 경매부터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을 필두로 한 시장 부활의 조짐은 있어왔다. 하지만 공급의 문제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이 경매로 하여금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최근 겸재뿐 아니라 조선 중·후기 문인화 시세는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준다. 3년간 300% 가까운 시세 상승을 이룬 겸재와 단원은 이미 호수 대비(비교에 무리가 있지만) 김환기, 박수근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두 화성의 뒤에 가려져 시장의 컬렉터들조차 생소했던 다양한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조차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사고자 하면 치고 받아야 하는 경합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는 고미술 인식의 재고가 도래했음을 눈치챈 투자형 컬렉터들과 다시금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가치와 희소성을 돌아본 기존 미술품 애호가들이 적극적인 매입에 나서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물론 작품성에 따라 아직 가격 편차가 존재하고 유명한 작가일지언정 유찰되는 결과가 빚어지기도 한다. 또 도자기와 목기 등은 주거공간과의 매칭과 보관상의 이유로, 서예는 한자 생활권을 벗어나 이해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직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회화시장의 성장이 일정궤도에 오른다면 앤틱시장 전반의 재평가가 이뤄지고 뒤이어 글씨와 골동의 매서운 제자리 찾기가 시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겸재 정선 ‘백운동’, 27.4x31.5cm, 낙찰가 1억6,500만원. /사진제공=서울옥션


전반적인 상황에 발맞춰 필드에서도 고미술 시장을 더욱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필드(현장)라 함은 고미술과 관련된 학계와 화랑, 상인, 경매회사를 일컬으며 노력의 대상은 소비자 즉 컬렉터이다. 눈에 띄는 조치나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랫동안 고미술 컬렉터들의 가장 큰 불안요소였던 위작시비, 작품의 진위여부 논란을 줄이기 위해 시장의 자정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화가 아닌 양심을 팔거나 전문성이 결여된 사람을 걸러내고 자신의 지위와 이해관계를 위해 경솔한 언행을 일삼는 자들을 자정하려는 노력은 이미 이 시장이 고객의 신뢰를 잃어봤기에 더욱 절실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유통되는 작품들을 검증할 다양한 장치마련과 학계와 시장의 상호협력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시장과 학계, 그리고 컬렉터가 함께 발맞춰 좀 더 견고한 한국 고미술 시장을 구축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지금껏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상하기 어렵다는 편견으로, 물질적인 가치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선조들의 옛 흔적들을 외면하거나 멀리해왔다. 순수한 우리 고미술을 즐기던 옛 컬렉터들은 세월에 밀려 서서히 줄어들고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많은 전문가와 인력들 또한 이 시장을 떠나게 되었다. 인프라의 축소와 자본의 퇴장에 따라 씁쓸한 내리막을 걸어온 20년, 영원히 사장될 것 같던 암흑 속에서 한 줄기 안광을 밝히며 눈을 뜬 고미술.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고미술의 태동부터 마땅히 제 것이었던 왕좌를 탈환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하고자 한다. /서울옥션(063170) 경매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