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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의 시발점 - 중석불 사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다’. 영국의 보수 성향 일간지 ‘타임스’의 1951년 10월 1일 자에 실린 사설의 일부다. 장정 50만 명을 소집해 9만 명을 얼어 죽고 굶어 죽게 한 국민방위군 사건과 각종 부정부패를 목도한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한국에 대한 혹평이 돌았다. 미국 ‘워싱턴 스타’ 지는 1952년 6월 6일 자에 ‘이승만 정권은 파시스트’라는 기사를 실었다. 육군 본부 작전 교육국 차장으로 근무하던 박정희 대령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강준만 전북대 교수, 한국 현대사 산책 2권).

시간이 좀 더 흘러 1952년 하반기 들어 한국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내려갔다. 오죽하면 미국이 한국에 주는 원조가 아깝다며 이승만 정권 제거 계획을 세웠을까. 결정적으로 두 가지가 나라 망신을 샀다. 부산 정치파동과 중석불(重石弗) 사건. 부산 정치파동이란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해 강행한 일련의 정치 사건을 통칭하는 것이다. 비상계엄령(1952.5.5)을 발동해 국회의원들을 구금,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관제 데모를 조직해 결국은 제1차 헌법 개정(7.7)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정권 연장의 기반을 닦았다.

헌법 개정으로 정치 파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정부가 외자를 불법으로 운용, 양곡을 수입해 특정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그 대가로 정치자금을 챙겼다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모르는 척하고 정부 관리들도 오리발을 내밀었으나 소문은 자꾸만 커졌다. 피해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농민들과 일반 국민은 정부가 방출한 달러로 민간업자들이 수입한 양곡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곡식의 가격이 적정가의 몇 배에 달했다는 사실. 차익은 업자들의 주머니를 거쳐 이승만 정권의 정치 자금에 들어갔다. 정권 연장을 위한 정치 파동을 일으키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연 몰랐을까. 법적으로 대통령은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외환관리규정까지 고쳐 단 1달러의 외화 지출도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물론 프란체스카 여사까지 달러화 사용을 막았다. 당시 여건에서는 당위성이 있는 조치였다. 외환 부족이 아니라 거의 없었던 탓이다. 통상 100달러 이상 외화 지출을 일일이 승인하던 이 대통령이 470만 달러에 이르는 중석불의 방출을 몰랐다고 하니 야당의원들은 기가 막혔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정부 부처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가운데 국회는 1952년 7월 18일 특별 조사단을 구성, 진상 규명에 나섰다.

국회가 조사한 사건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우선 거금이 들어온 것부터 이례적이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천운을 만났다. 1952년 3월 미국 측의 요구로 한미중석협정을 맺고 미국에 중석 1만 5,000t을 수출하게 됐으니까. 더욱이 미국은 선금 470만 달러를 선뜻 내줬다. 사실 미국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중석이란 말 그대로 무거운 금속. ‘텅스텐(Tungsten)’이란 단어 역시 스웨덴어로 ‘무거운(tung) 돌(sten)’이라는 뜻이다. 무겁고 단단해 주요 금속 중에서 녹는 온도가 가장 높다. 즉 열에 강해 대포 포신 같은 무기 제조의 필수품이지만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한국전쟁과 세계적인 냉전 분위기 속에서 무기 제작을 위한 중석의 수요는 늘어난 반면 세계 수요량의 30%를 공급하던 중공이 수출을 막아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한국에 선금을 줄 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중석불은 분명한 용도가 있었다. 기계류나 선박 등 산업용 자재 수입에만 활용할 수 있도록 법까지 만들었다. 생산력을 높이는 데 외자를 쓰자고 만든 법을 정부 스스로 깼다. 관료들은 ‘노무자들을 잘 먹여야 더 많이 캐낸다’는 논리를 들이밀며 양곡 수입용으로 용도를 바꿨다. 중석불은 정치자금을 낸 특정 민간업자들에게 나눠줬다.

물론 업자들은 우리 돈과 달러를 맞바꿨다. 적용된 환율은 고정 환율인 1달러당 6,000원. 업자들은 달러당 2만 원을 웃돌던 암시장에 중석불을 풀어 환차익을 거뒀다. 업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입한 양곡에서도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워 폭리를 취했다. 수입 밀가루를 적정가격 한 포대 4만 5,000원보다 훨씬 높은 12만 5,000원에 팔았다. 포대당 2만 8,800원인 비료는 12만 1,800원에 팔아넘겼다. 소비자와 생산자(농민)에게 고루 폭리를 취했으니 불만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업자들은 마음껏 활개쳤다. 국무회의가 만든 안전장치도 무시하고 폭리를 얻었다. 국무회의는 애초 중석불로 비료와 식량을 도입하되 농림부가 지정하는 가격으로 지정된 지역의 농민과 중석 탄광 노동자들에게 공급하기로 의결했으나 말 뿐이었다. 업자들이 어떻게 이를 무시하고 폭리를 취한 것일까. 국회 조사단은 정치자금을 내면서 여기저기 눈치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조사단이 파악한 업자들의 이익은 환차익 505억 원, 가격 조작 265억 원 등 모두 770억 원.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한사코 부인했지만, 미국 대사관은 중석불 매각으로 인한 환차익 대부분은 여당으로 들어갔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더 큰 문제는 사후처리. 수입 농산물 가격을 문제 삼아 농림부 장관과 차관, 국장, 과장들이 줄줄이 사표를 쓴 반면 사건을 주도한 재무부 라인은 정권의 비호 속에 승진 가도를 달렸다. 당시 재무부 장관은 유신정권에서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법적 처벌은 업자 몇몇이 5년 뒤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게 전부다. 당국 역시 진상 규명 의지가 전혀 없었다. 법정에 담당 검사가 출석하지 않아 공판이 열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전선에서는 군인들이 죽어 나가고 국민들은 먹거리가 없어 굶는 와중에서 이승만 정권은 이런 일을 펼쳤다. 병사들의 방한복을 만들 원면을 빼돌리라는 지시를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 지휘부를 내쫓은 적도 있다. 얇은 방한복을 지급 받은 병사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산업을 일으키고 인재를 키울 돈을 정권 연장에 쓰는 동안 나라 경제의 대외 의존구조는 더욱 심해졌다. 원조 물자를 불하하는 과정에서 정경 유착 구조가 자리 잡았다. 정부의 입김도 강해져 정치권이나 관료의 눈에 들지 못한 기업은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는 후진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미국의 저가 잉여 농산물 원조를 기반으로 하는 농산물 저가격 정책의 부작용도 컸다. 농민들은 가격 경쟁력을 애초부터 상실하고 애써 단행한 농지개혁의 성과마저 빛이 바랬다. 농민들은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고향을 등졌다. 도시 빈민굴로 모여든 농가는 과도한 노동력 공급으로 이어지고 저임금을 고착화시켰다.

무엇보다 심각한 부작용은 정권의 불법 자행과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의 무법(無法)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법과 탈법을 저질러도, 국민경제에 해악을 입혀도 전혀 처벌받지 않고 되려 출세하고 돈을 만진다는 풍조가 대한민국의 엘리트 집단에 퍼졌다. 법과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조직에 반(反)하는 자로 찍혔다. 전쟁의 한 복판에 정권 유지를 위해 벌어진 최초의 대형비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쳤다. 사회 전체의 도덕률도 땅에 떨어졌다.

역대 정권은 등장할 때마다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웠으나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뺨쳤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를 비분강개하던 박정희 대령과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 성공 후 민정 참여 자금을 마련하려고 저지른 4대 의혹사건은 중석불 사건의 규모를 수십 배 웃돈다. 악이 보편화하며 양심도 사라진 것인지, 한국의 주식시장을 10년간 불신의 상징으로 만들면서도 권력자들은 부끄러운지 몰랐다. 재벌에게 수천억 원 정치자금을 받고도 골목 대장 인양 당당하게 대국민 성명에 나선 지도자도 있었다.

잘못 끼운 첫 단추인 중석불 사건 65주년, 이제는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새롭게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척결에 나서고 있지만, 고착화하고 체질화한 비양심과 불법 구조를 얼마나 깨트릴지 두고 볼 일이다. 흠결투성이인 국무위원 후보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자유당 시절부터 불법에 물들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방증 아닌가. 질기고 질긴 부패 구조가 이제 깨졌으면 좋겠다. 설령 성과를 크게 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에 다가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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