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북핵·미사일 위기와 관련해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제안한 문재인 정부에 “적극적 사고에 기초해 한반도 피스 메이킹(평화구축) 프로세스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달 초 잠시 귀국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같이하며 남북 관계의 해법과 한미 동맹 등에 관해 조언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의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한반도 평화 가능성: 남북평화의 준비, 구축, 보장)’ 출간을 기념한 ‘문재인 시대, 한반도 안보와 외교 대토론회’에서 격려사와 기자와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 정세가 지난 1950년 한국전쟁 이래 최대 위기라는 것은 떨쳤지만 위기를 빨리 극복해 피스 메이킹으로 가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최근 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활동을 언급하며 “남북한 군사 당국자 간에 우발적 사고를 방지해야 하고 피스 메이킹 프로세스를 위해 한국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갈지가 큰 과제”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3대 세습을 해오며 국제사회의 어마어마한 제재를 받고도 버티고 있는 것을 볼 때 평화 정착과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도 많다”고 전제한 뒤 “남북이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지만 우리가 여기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앨버트 허슈먼이 ‘바이어스 포 호프(희망에 찬 편견)’라는 말을 한 것처럼 평화 정착과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남북 고위급회담이든 군사당국회담이든 적십자회담이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평화 구축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 테러와 극악무도한 범죄, 천재지변 시 등 수천 번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깊이 우려한다(extremely concern)’ 등으로 표현했지 절대 ‘프러스트레이션(frustration·좌절감)’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한은 역경을 이겨내는 리질리언스(resilience·충격 이후 회복력)와 디파이언스(defiance·저항)가 강한데 (내부적으로)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이 소위 숙명론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냐. 우리 국민들이 통일은 안 된다는 숙명론에 빠져야 하느냐.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과 외부에 알리고 인커리지(encourage·용기를 북돋움)하면 낫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어 “남한은 군사독재에서 많이 죽어가며 민주화했고 (세계사적으로도) 절대군주·독재정권이 국민의 저항을 받고 많이 무너지는 것을 봤는데 북한은 왜 그렇지 않은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은 올 2월 19대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갔다가 이달 5일 귀국해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2015년 12월 타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의 역작으로 꼽으며 유엔의 ‘2030 지속가능개발 목표(2030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국내 달성을 목표로 글로벌사회공헌원에 ‘반기문지속가능성장센터’도 열었다.
한편 임 교수는 이날 기조발제에서 “대북 제재와 압박을 한다고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번갈아 대북 지원을 해 이를 무력화시켰고 역설적으로 북이 핵강국이 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벌어줬다”며 “제재와 압박은 북한의 독재자를 혼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재자가 안심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유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며 대화와 협상 병행전략을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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