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세자 이선이 진정한 군주로 거듭나는 극적인 과정은 유승호의 깊은 눈빛과 내면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군주’는 최고 시청률 14.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수목극 1위의 왕좌에 앉을 수 있었다. 이선과 함께 유승호의 강단있는 성장을 엿볼 수 있다.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가진 의문으로 ‘유승호는 왜 또 사극을 할까?’ ‘멜로는 언제하나?’가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승호는 “그 전에 했던 사극영화 두 편의 성적이 사실 좋지는 않았다. ‘군주’를 촬영하기 전, 잘 될까 걱정이 많이 앞섰다.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다. 시청자들 반응이 괜찮으면 현장 반응도 업 됐다. 모든 상황이 좋았던 것 같다. 모두들 마음도 잘 맞고 착한 배우들 이었다”고 허심탄회한 종영 소감부터 전했다.
연이은 사극 도전의 이유를 묻자 “내가 사극만을 편애해서 한 건 아니었고, 용기가 부족했던 게 있었다. 내가 멜로나 다른 장르를 하는 것보다도 슬픈 감정을 다루는 것에 공감을 많이 한다. 그리고 일단 사극이라 하니 자신이 있었다. ‘군주’ 속 이선은 ‘리멤버’ 서진우와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다행히 이번에 결과가 좋아서 다음 작품은 용기를 내서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더라. 무조건 현대극을 해야겠다”라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유승호는 유독 ‘슬픈 감정’에 공감하는 이유로 “내가 멜로가 굉장히 약하다. 멜로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고 설레는 감정이 생각보다 깊이 와 닿지 않더라. 슬픈 감정을 할 때는 상대방의 눈만 봐도 굉장히 가슴이 아프더라. 그러다보니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동시에 유승호가 멜로를 좀처럼 택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여기에 그는 “사극이라는 장르가 알고 보면 재미있고 쉽기도 하다. 사극은 일정 부분 정해진 억양과 느낌이 있다. 거기서 캐릭터만 잘 파악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게 사극인 것 같다. 지금까지 선한 역을 많이 했다. 악한 역할도 많이 해보고 싶다. ‘정말 나쁜 놈’을 경험 해보고 싶다. 멜로도 해야 하긴 하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라고 덧붙였다.
‘군주’에서 이선은 여느 왕보다도 적극적이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 ‘애민정치’를 실천한 왕이었다. 유승호는 “대사 중간 중간에 보면 항상 내가 하는 얘기 중 ‘백성을 위해서’가 있다.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내가 왕이 될 순 없습니다’라고도 한다.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어려운 방법을 택하는 게 극 중 세자의 태도였다. 시청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답답함을 느끼셨을 수도 있겠다”라고 캐릭터를 설명했다.
극 중 김소현이 연기한 한가은은 아버지의 일로 이선을 복수하려다 이선이 왕좌에 돌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으로 훗날 이선과 애틋한 감정을 교류하기도 했다. 유승호는 파트너 김소현에 대해 “제작발표회 때도 내가 누나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로 성숙하고 올바른 친구였다. 지금껏 내 파트너는 모두 연상의 누나들이었다. 멜로가 잘 안 되다보니 누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소현이는 아직 19살에다가 나보다 6살 어린 동생이어서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하면서는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연기한 연상의 배우들처럼 의지하게 됐다.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밖에도 천민 이선으로 분한 김명수(인피니트 엘), 김화군 역을 맡은 윤소희가 또래 배우로서 화기애애하고 편한 촬영 현장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또래들이다보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명수 형이 나처럼 고양이를 키워서 더 친해지기도 했다.(웃음) 배우 경험을 많이 해본 입장으로서 ‘형 이번엔 감정소모도 많이 되고 힘들 거예요’라고 조언도 하고 그랬다. ‘형 근데, 힘든 만큼 배우들이 웃으면서 서로 위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다’라고도 했다. 형도 많이 동의해줬다. 다른 배우들도 역할에 감정 기복이 많아 힘들었을 텐데 다들 너무 잘 연기해줬다. 또래 친구들처럼 힘든 게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하면서 촬영할 수 있었다”
‘군주’는 선 팔도의 물을 사유해 강력한 부와 권력을 얻은 조직 편수회와 맞서 싸우는 왕세자의 의로운 사투를 그린 드라마였다. 이에 따라 이선은 가면을 쓴 채 신분을 감추고 활약한 바 있다. 해당 장면을 떠올리며 유승호는 “가면 연기가 진짜 어려웠다. 초반에만 내가 쓰고 명수 형이 계속 가면을 쓰면서 공감한 게 있었다. 얼굴 대부분이 가려지고 눈과 입만 보이니까 감정이 도저히 표현이 안 되더라. 내가 100%를 표현했다고 해도 2~300%는 표현해야 감정이 전해지더라. 그래서 오버스럽게 연기를 했던 것 같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군주’는 지금 이 시대에 어지러웠던 시국을 비유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이 같은 메시지를 연기로 전한 유승호는 “세자는 모든 일에서 ‘백성을 위한다’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게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지도자에 대한 작가님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슬픔을 누군가에게 털어만 놓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지도자가 백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로 마음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했던 게 아닐까”라고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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