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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곳간 좀먹는 예산적폐 없애라] '5개년 재정계획' 구속력 없어 유명무실...목표 세워도 추가지출 일쑤

2부 - <하> 주먹구구 재정 관리

정치·사회이슈따라 '재정 널뛰기'...목표와 실제 큰 차이

文정부 지출 대폭 확대 속 재정상황 더 나빠질 가능성

"재정건전화법 통과 시급...채무 총량 국회 심의도 필요"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5개년 단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수백조원에 이르는 나랏돈을 체계적으로 예측성 있게 쓰기 위해서다. 재정운용계획은 앞으로 5년간의 재정지출 규모와 재정수지, 국가채무 규모 목표를 설정한다. 하지만 이 목표들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다. 목표치가 구속력이 없어 매년 예산을 짤 때 충분한 검토 없이 이런저런 사업과 재정지출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허울뿐인 계획이라는 얘기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연도별 재정관리 목표를 세워도 국회나 행정부나 실제 예산을 짤 때는 이를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이렇다 보니 우리도 형식적으로 계획을 만들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재정운용계획상 재정관리 목표와 실적치는 괴리가 크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취임 첫해 5개년 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 재정수지를 2014년 -25조9,000억원, 2015년 -17조원, 2016년 -14조1,000억원 정도로 맞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목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 기간 재정수지는 각각 29조5,000억원, 38조원, 22조7,000억조원 적자였다.

국가채무(D1)는 상황이 더 심각한데 목표치와 실적 간 차이는 18조원(2014년), 41조1,000억원(2015년), 44조원(2016년)에 이르렀다. 물론 이 차이는 채무가 더 늘어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주먹구구 재정 관리 시스템이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해마다 경제·사회 상황이 달라져 재정운용계획이 정한 각 연도별 목표치를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국가 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지 않도록 한다’ 등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재정 건전성 관리 장치라도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없다. 이 때문에 그때그때 정치 상황이나 사회 이슈에 따라 재정 지출이 널뛰기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선진국을 바라보는 국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예산·재정 관리 시스템은 후진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해외 국가들은 저마다 재정을 건전성 있게 유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 이른바 ‘재정준칙’을 두고 있다. 독일은 채무준칙을 통해 신규 채무가 GDP 대비 0.35% 이내로 유지되도록 통제한다. 미국 역시 법률에 의해 채무 한도를 매년 통제하며 재정의 의무지출이 증가하는 내용의 입법을 할 때는 늘어나는 예산을 보충할 만한 재원조달 방안도 같이 제시하는 ‘페이고’ 제도를 운용 중이다. 스웨덴은 한층 엄격해서 중앙정부의 총지출 한도와 27개 분야별 지출 한도를 설정해 지키도록 하고 있다. 한국재정정보원에 따르면 이런 재정준칙을 운영 중인 나라는 2014년 기준 85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선진국이 29곳이며 개발도상국과 저소득국가도 각각 33곳, 23곳이나 된다.

문제는 재정관리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은 확대일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5%로 예상된다. 2016~2020년 재정운용계획에서 정한 3.5%보다 1.5%포인트 높은 수치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필요하면 나랏돈을 적극 풀어야 한다’는 기조여서 그때그때 예상치 못한 재정 소요가 불어날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이미 충분한 논의도 없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지원으로 1년에 3조원을 쓰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약에도 없었던 내용이다. 이렇게 나랏돈 씀씀이가 커지면 재정 건전성이 흔들릴 우려가 크다. 더구나 정부는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매년 12조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이 목표를 지키지 못하면 재정지출 규모는 예상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역시 재정 절감으로 연 16조3,000억원을 아낀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이행한 규모는 약 9조원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재정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정부의 재정확대 기조가 아니라도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복지 등 재정지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제도가 없으면 대규모 채무 발생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논의된 ‘재정건전화법’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건전화법은 GDP 대비 국가채무 총액을 45%로 유지하고 재정수지 적자를 GDP 3% 이내로 관리할 것을 규정한 법이다. 지난해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쳤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5개년 재정운용계획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의견도 있다. 백웅기 상명대 경제금융학 교수는 “재정운용계획에서 세운 재정수지·국가채무 등 총량 목표에 구속력을 부여하고 운용계획 자체를 국회 심의까지 거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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