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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창간 57주년 사설] 拔苗助長(발묘조장)의 잘못을 범하지 마라

  일자리 창출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정규직화 등 손쉬운 성장 서두르다간

 '경제의 싹'만 오히려 고사시킬 뿐

  노동개혁 통한 근본적 처방 나서야

맹자의 공손추(公孫丑) 편에는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싹을 위로 잡아당겨 자라는 것을 돕는다’는 뜻으로 서두르다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말할 때 사용된다. 제자 공손추가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대해 묻자 맹자는 송나라 때의 고사를 들려준다. ‘송나라에 한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는데 곡식을 심은 뒤 밭에 나가보니 다른 사람의 묘목보다 덜 자란 것 같았다. 이에 모든 싹을 조금씩 위로 당겨 올려줬다. 그의 아들이 이 말을 듣고 황급히 달려가 보니 싹들이 모두 시들어버렸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좋다고 해서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80여일이 지나면서 경제정책 방향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새 정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를 바탕으로 경제정책의 큰 틀을 확정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 경제정책의 키워드는 ‘착한 성장’이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공공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소비 증가→내수 확대→투자 증가→경제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계산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분배 문제에 개입해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초유의 경제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기업 법인세 인상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 전환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가운데 양극화 심화와 청년실업률 급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실제로 최근 청년실업률은 심각한 상황이다. 6월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자 수는 106만9,000명으로 6개월 연속 100만명을 웃돌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10.5%로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최악 수준이고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무려 23.4%에 달한다. 청년 4명 가운데 1명꼴로 ‘백수’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노는 청년들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다. 정부는 재정 투입을 늘려 소득을 늘릴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일시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공 부문을 무한정 늘리는 것은 재정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1명의 고용을 유지하는 데 한 해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110만7,972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해 공무원을 유지하는 데 120조원의 돈이 드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7.3%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결국 방법은 민간의 적극적인 고용 창출밖에 없다. 관건은 정부 스탠스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선의 빚을 갚으라며 압박하는 노동계를 설득하기는커녕 쩔쩔매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도 “노동계를 대접할 테니 1년만 시간을 달라”고 하소연할 정도다. 반면 경영계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노동계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는 노사관계 악화로 연결된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 가운데 55.8%는 “올해 노사관계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노사관계가 나빠지면 투자나 고용에는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하반기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는 기업이 전체의 60%에 달했고 인력 채용을 상반기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기업도 68%나 됐다. 벌써 최저임금 인상을 견디지 못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나서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 탈핵화 정책에 따른 전기료 인상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인상도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손쉬운 정책에 몰입하면 고용시장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고용 경직성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39개국 가운데 83위에 그쳤다. 근로자 1명을 해고하는 데 드는 비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BRICS 소속 39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근로자의 노동생산성도 35개 OECD 국가 중 28위다. 한마디로 노동생산성이 낮고 고용 유연성은 떨어지는 구조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생산성 향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특히 중요하다. 소득을 늘리겠다고 정규직 고용을 고집한다면 기업경쟁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앞으로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끌어내릴 첫 번째 요인은 구조개혁 후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는 저성장·고령화라는 지난 9년 동안 보수정권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떠안고 출범했다. 그만큼 새 정부의 책임이 막중한 시기다. 이러한 때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을 놓아두고 손쉬운 퍼주기식 정책에만 급급하면 ‘발묘조장’의 잘못을 범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로 인해 우리 경제의 싹이 고사하면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까지 두고두고 엄청난 고통을 초래한다. 정부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노동개혁에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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