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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 설





1995년 8월 3일 아침 출근길. 신문 가판대에 시민들의 눈길이 쏠렸다. 초대형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제목은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 수천억 가명 계좌 보유설.’ 시중에 뜬소문으로만 떠돌던 얘기가 최초로 보도된 것이다. 조선일보만 이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대문짝’만 하게 다뤘다. 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기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문민정부의 실세로 꼽히던 서석재 총무처 장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보도는 전국을 뒤흔들었다.

우선 기사가 나온 경위를 더듬어 보자. 이틀 전인 8월 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한정식집.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인 서석재 총무처 장관이 여당인 민자당 출입기자 7명과 만찬을 가졌다. 교류가 많지 않던 여당 출입기자들과 이날 저녁은 지역구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던 서 장관이 마련한 자리였다. 여당이 패배했던 6·27 지방선거와 삼풍백화점 붕괴(6월 29일) 등을 얘기하며 자연스레 폭탄주가 돌았다. 취기가 살짝 오를 무렵, 서 장관이 ‘오프(off the record)’ 즉 비보도를 전제로 얘기를 꺼냈다. ‘4,000억 원대의 가명계좌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중 절반을 정부에 기증하면 자금출처를 조사받지 않고 실명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고 타진해 왔다는 것이었다.

가명계좌 소유주가 누구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서 장관은 ‘과거 실력자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기자들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중 한사람 아니냐’ 다시 묻자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김영삼 대통령이 한 푼도 안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기 위해 꺼낸 말이니 오해는 하지 마시라’고 덧붙였다. 서 장관이 조건으로 내걸었던 ‘비보도’는 이틀 만에 깨졌다. 취재원과 비보도 약속과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조선일보의 1면 머리기사는 정국에 파문을 일으켰다.

서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사석에서 술 한잔 하면서 시중 소문을 가볍게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국민들의 의구심은 더 커져 갔다. 거액 가명 예금의 당사자로 지목된 전직 대통령 두 사람 측근들은 역공세를 택했다. ‘우리와 상관없다’며 김영삼 정권의 해명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야당은 검찰 수사 착수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궁지에 몰린 청와대와 여권은 서 장관을 해임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개인적 실수로 돌린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었던 서 장관의 견책성 사임에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눈을 뜨고 낙종(落種·특종의 반대)한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비자금 문제를 들췄다. 언론에 당사자로 지목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퇴임 이후 동네북처럼 얻어맞아도 참았다. 그러나 이번 같은 고약한 일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제일 잘 참는 사람도 참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 지시로 부랴부랴 수사에 나선 검찰은 엉뚱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슬롯머신 자금 1,000억 원이 1년여 동안 11단계나 거치면서 액수가 4,000억 원으로 과장되고 전직 대통령의 돈으로 둔갑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검찰은 정말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 등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와대까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사 방향을 잘못 잡고 진실과 거리가 먼 결과를 발표한 데는 이유가 있다. 노태우 비자금의 일부를 받아 선거 자금으로 활용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의혹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까지 동원돼 파문 덮기에 나선 끝에 결국 현직 장관에 의한 ‘전직 대통령의 4,000억 원 비자금설’ 파문은 진정되고 촌극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두 달 보름여 뒤. 국회 본회의 발언에서 민주당 소속 박계동 의원이 통장 사본을 들이대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했다. 노 대통령 측은 이번에도 딴청을 부렸다. ‘전혀 사실무근이다, ‘검찰은 철저하게 조사해 명예회복을 시켜달라’,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도 알고 싶다’. 노 전 대통령 측의 완강한 부인에 여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야당이 단단히 헛발질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은 노 대통령의 비자금이 맞았다. 노씨 측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비자금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역공에 나섰던 것. 자신의 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노씨는 10월 27일 연희동 자택 앞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못난 노태우, 외람되게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말로는 다할 수 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입니다’로 시작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노씨는 대통령 재임 동안 모은 비자금 총액이 5,000억 원이었으며 당시까지 갖고 있던 비자금 잔액은 1,700억 원 가량이라고 밝혔다. 노씨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이때까지 노씨는 구속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대구로 낙향하는 선에서 매듭지을 생각이었다. 청와대와 여권과도 그렇게 입을 맞췄다. 그러나 언론 보도로 노씨의 비자금이 실토한 것보다 크고 부동산 투기와 은닉재산이 드러나자 기류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비자금 규모가 수백억원대라고 생각했던 청와대와 여권은 비자금 규모가 크다고 확인되자 강경 대응으로 돌았다. 결국 노씨는 구속되고 뇌물을 전한 혐의를 받은 재벌 총수들도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재벌 총수들은 하나같이 실제로 건넨 뇌물 액수보다 줄여서 진술했다. 검찰이 파악한 노씨의 비자금 규모는4,600억 원. 노씨는 징역 15년에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다. 수사 과정과 선고에 이르기까지 수천억 원씩 드러나는 치부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짜장면이 2,000원, 버스 승차권이 300원이던 시절에 전직 대통령이 수천억원이나 비자금을 조성하고 부동산까지 사들였다니!

국민적 충격과 공분은 12.12쿠데타와 5.18 광주학살 사건의 진상규명 요구를 낳고 결국 ‘5.18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기소할 수 없다’던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11명을 반란수괴 혐의로 구속했다.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수사과 재판을 통해 두 전직 대통령은 마침내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석재 총무처 장관이 밝힌 비자금 파문으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난 1996년 8월 25일 노씨는 1심에서 군형법상 반란,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상관살해, 뇌물수수 등 10여가지 죄목으로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다소 감형했으나 징역 12년 확정형을 받았다. 전 씨에게 선고된 형량은 1심과 항소심 모두 사형. 1997년 대선 직후 국민 대화합을 위해 두 사람을 석방시켜 달라는 김대중 당선자의 청을 김영삼 대통령이 받아들이기까지 두 사람은 약 2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외환위기가 막 시작되던 무렵에 두 전직 대통령은 풀려났지만 국민들과 기업들은 IMF라는 고통스러운 터널을 만났다. 두 전직 대통령은 끝까지 ‘비자금이 아니라 통치자금’이라고 강변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준조세 또는 특혜사업을 위한 급행료와 다름 아니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훗날 공중 분해된 대우와 한보·동아그룹 등도 수백억 원씩을 갖다 바쳤으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사람들은 외환위기가 갑자기 닥친 게 아니라 쌓이고 쌓인 부패와 정경유착, 고비용 구조 때문이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과연 그런 것들을 떨쳐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개발 연대부터 축적된 부패 구조가 외환 위기를 맞아 없어졌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중단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큰소리치는 정치인 가운데는 뇌물 수수 혐의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외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난 1976년 뇌물 수수로 구속된 다나카 일본 수상은 록히드사의 뇌물 3억 엔(36억원) 때문에 물러났다. 단위도 한국이 훨씬 크고 얼굴 또한 두껍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에게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바치는 행태는 이제 사라질 수 있을까. 사회적 충격이나 파문을 겪어도 실수를 반복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참으로 지긋지긋하다. 정치 권력과 돈의 결합이라는 적폐구조가.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당시 같은 저녁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 가운데 서 장관의 얘기를 회사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기자들은 문책을 피할 수 없었다. 보고 받은 부장 가운데 국장과 상의하지 않은 데스크들도 마찬가지로 시말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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