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들쥐 주변을 까만 점 같은 것들이 에워싸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수많은 병정개미가 들쥐와의 승부에서 승리한 모습이다. 제 몸집보다 3,000배나 더 큰 들쥐 앞에서도 개미군단은 거뜬하다. 이 힘의 원천은 많은 종족, 일관된 명령, 분권 조직체계, 신호 패턴 탐색, 이웃의 관심이라고 한다.
지난 1996년 한국 유통시장 개방 이후 7만여개 동네슈퍼들은 길을 잃고 방황해왔다. 유통업은 덩치가 곧 힘, 규모의 경제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어떻게 살지 고민한다. 싸게 사는 방법도 팔리는 물건도 모른다. 가랑잎 위 개미는 이대로 가라앉고 만다고 걱정이다.
정부는 10년 전 8,000여개의 동네슈퍼에 재고관리용 포스(POS)시스템과 지역별 소규모 물류센터 마련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20%에 못 미치는 물류센터 활용과 POS시스템 판매정보의 활용저조로 100%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개미가 이 고민에 답을 준다. 수많은 개미가 모은 정보를 페로몬을 통해 한 마리가 모두 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상공인 정책의 중요한 방향 중 하나는 큰 기업의 경쟁력을 대체하는 페로몬과 같은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편의점을 보자. 올해 전체 유통업계는 소폭으로 매출이 줄지만 편의점은 14%나 늘어난다고 한다. 이들의 비결은 요즘 직장인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접근성, 최저임금 논란의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때문이라고 하지만 동네슈퍼가 따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전국 3만개의 편의점을 하나로 묶는 판매정보시스템, 자동발주와 배송시스템을 통해 싼 가격, 팔리는 제품을 신속하게 받는 것이라고 한다. 어. 개미 이야기네.
동네슈퍼에도 POS시스템은 이미 있으니 참여 슈퍼를 확대하고 자동 주문네트워크를 만들면 된다. 하나는 작지만 합치면 주문은 커진다. 매일 지역별로 돌며 해당 물건이 필요한 곳에만 배송해주면 비용도 줄고 필요한 물건만 제때 받을 수 있게 된다. 개미가 말할 것 같다. ‘바로 이거야.’
하지만 한 가지, 패턴인식이 부족하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동네슈퍼를 위한 빅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POS시스템을 통해 매년 2억5,000만여건의 자료가 쌓여가고 있다. 이를 활용한 빅데이터라면 지금과는 다른 고도화된 판매예측도 가능해진다. 카드회사 정보, 날씨정보 등을 보탠다면 더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개미는 작지만 몸무게의 40배 이상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동네슈퍼 사장님의 의지도 40배 강해져 엄청난 덩치의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 날이 곧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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