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2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중법정 311호. 침착한 표정으로 법정에 선 박영수 특별검사는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59개 계열사로 이뤄진 우리나라 최대의 재벌기업”이라는 말로 최후의 논고를 시작했다. 특검은 삼성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받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지자 승계작업을 추진하면서 “전형적인 정경유착 부패범죄를 저질렀다”며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특검의 주장이 허구와 모순으로 가득 차고 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이 부회장을 유죄라고 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최후의 반박을 펼쳤다.
●특검
승마·재단지원·독대만으로도 뇌물죄 입증
李부회장, 금품제공 등 전혀 몰랐다는건 허위
●삼성
무죄추정 원칙 넘어설 만한 아무런 증거 없어
경영권 승계는 ‘가공의 틀’…거론한적도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가 이날 연 결심공판에서 박 특검은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삼성 임원들의 뇌물 공여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박 특검은 “통상적으로 대기업 뇌물 사건에서 가장 입증이 어려운 부분은 돈을 건넨 사실과 그룹 총수의 가담 사실인데 이를 피고인들이 자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지난 2014년 9월, 2015년 7월, 지난해 2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한 것은 명백한 사실로 확인됐다.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를 지원하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약 16억원을 후원한 사실이나 삼성 계열사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204억원을 출연한 일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이 같은 팩트에다 특검은 독대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현안이 논의됐고 이 부회장은 정씨 지원을 포함한 금품 제공에 합의했다는 주장을 폈다. 박 특검은 “경제계 최고권력자(이 부회장)와 정계 최고권력자(박 전 대통령)가 독대 자리에서 뇌물을 주고받기로 하는 큰 틀의 합의를 하고 그 합의에 따라 삼성 계열사들과 주요 정부 부처 등이 동원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이 정해지면서 진행된 범행”이라고 이번 사건을 정의했다.
박 특검은 이어 정씨 지원, 재단 출연 같은 금품 제공을 몰랐다는 이 부회장이나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최 전 부회장 등의 증언은 삼성 총수를 살리기 위한 허위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총수의 전위조직인 미래전략실 실장이 총수의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은 경험칙이나 상식에 반하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기업범죄에서 총수를 살리기 위해 전문경영인이 허위 자백을 한 경우와 같다고 덧붙였다. 피고인석에 나온 삼성 임원들이 한사코 범행을 부인하며 이 부회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허위 증언을 하는 이상 법정형보다 낮은 구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특검 측의 판단이다. 특검은 이날 최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전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전 대한승마협회장)에게 징역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7년이 구형됐다.
삼성 변호인단은 특검의 주장에 대해 “허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며 “특검의 주장은 헌법의 무죄추정 원칙을 넘어설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을 이끈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송우철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이 부회장의 승계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며 “특검이 있지도 않은 뇌물의 대가를 만들어낸 것이 근본적 문제”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 부회장이 승계를 추구하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회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송 변호사는 “특검이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잘못을 범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승계가 ‘가공의 틀’인 만큼 독대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승계 현안을 거론할 필요도 없었고 사실도 아니라고 부정했다. 변호인단은 실제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같은 그룹 현안에 박 전 대통령이 도움을 준 사실이 없고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같은 계획은 독대 이후 무산됐다는 근거를 댔다. 박 전 대통령이 현안 성사를 대가로 뇌물 수수에 합의했다는 특검의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피고인들을 사실상 유죄로 추단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죄를 밝히는 과정이 어려웠다”며 이 부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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