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잠시 이별을 하게 됐습니다. 내일부터 제작거부를 시작합니다”
18일 아침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 밝은 톤의 마지막 인사 사이의 울먹임이 라디오 전파를 탔다. 이 아나운서는 “사랑하는 선배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하나뿐인 동기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시 여러분들 앞에 마이크 앞에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설 수 있도록, 좋은 친구 마봉춘(MBC의 애칭)으로 돌아오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MBC 아나운서 27인이 파업을 시작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에서 밝힌 파업 참여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한준호 등이다. 이재은 아나운서처럼 방송을 통해 직접 시청자들과 인사를 나눈 아나운서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을 만나지 못한 지 5년이 넘었다. 이 아나운서가 언급한 동기였던 김소영 전 아나운서도 이달 초 MBC를 떠났다. 사측에 의해 1년 가깝게 방송을 쉬게 되면서 좌절한 탓이다.
27명의 아나운서가 떠났지만 여전히 MBC의 얼굴로 남아있는 아나운서들이 있다.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과 뉴스데스크 앵커 배현진 아나운서를 비롯해 양승은, 김완태, 김미정, 최대현, 이재용, 한광섭 아나운서 등이 파업 명단에서 빠졌다.
신동호 국장은 한때 ‘리틀 손석희’로 불리며 손석희 JTBC 사장이 진행하던 MBC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 ‘시선집중’을 물려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나운서 국장의 자리에 오른 후 후배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영화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감독(前 MBC 피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동호는 아나운서 선배이면서 아나운서 국장이 되어 후배들의 마이크를 빼앗고 아나운서라는 직종에서 몰아냈다”며 “MBC 대표 아나운서들이 쫓겨난 자리를 배현진 등 파업 중 복귀한 아나운서들이 차지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배현진, 양승은 아나운서도 한때 2012년 파업에 동참했다가 복귀하면서 회사 측의 편에 섰다. 특히 배 아나운서는 2012년 이후 현재까지 MBC 뉴스데스크 간판 앵커를 맡고 있어 백지연 앵커를 잇는 최장수 앵커가 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편, MBC 구성원들은 2012년 한국 언론사 중 최장 기간인 170일간 파업 투쟁을 벌여 언론인 박성제 등 6인이 해직됐고 108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를 받지 않은 이들 중에서도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 기자, PD 등 200명이 현업에서 축출돼 본래 하던 역할과 무관한 일을 맡았다.
MBC는 오는 24일부터 총파업 여부를 정하는 투표를 실시해 다시 한 번 최후의 파업 기로에 섰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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