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은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브이아이피’는 느와르의 새 지평을 연 영화이다“고 말했다.
“저희는 철저히 사건 중심의 느와르 영화다. 감정을 교류하기 보단 네 명의 캐릭터가 계주하는 느낌이랄까요. 바톤을 계속 넘겨받으면서 각자 맡은 부분만 책임지고 톤앤매너를 유지하죠. 사람들이 ‘신세계’랑 비교해서 실망하는 것도 끈끈한 브로맨스나 감정교류를 기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가 깡패들이 넥타이를 매고 정치하는 이야기였다면 ‘브이아이피’는 이야기를 확장해 국가 기관들의 이해 관계와 정치를 그려 경험해보지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다. ‘신세계2’를 만들려다 실패한 것이 아니다는 의미다.
“보통 느와르 영화의 룰을 따른 게 아닌, 저희는 소재로 밀고 나가는 영화에요. 캐릭터 무비 일색이었던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낸 거죠. 그 안에서 느와르적인 요소와 볼거리가 있고요. 저는 느와르의 또 다른 신세계를 열었다고 자부해요.”
채이도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VIP 김광일(이종석)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어떤 신념보다는 집념의 사나이다. 누군가는 전형적인 경찰 캐릭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박훈정 감독은 최대한 건조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난 걔들이 누군진 관심 없고, 범인인지 아닌지만 알면 되는데. 문제 있어?” 란 채이도의 대사 역시 캐릭터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다.
“보통 캐릭터의 전사를 쓰는 편인데 감독님이 이번엔 그런 걸 상상하지 말라고 하더라. 채이도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형사가 된 게 아니라 본인 잘난 맛에 사는 인물이다. 동료 경찰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도 ‘내가 동료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 ‘능력도 안 되는 애한테 사건을 맡기니까 애가 죽지 않냐’ 이런 식으로 말한다. ‘츤데레’ 같은 모습도 담긴 했는데, 관객들이 이 인물에 몰입하거나 빠져들지 않아야 했다.”
김명민은 단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뺄셈 작업에 들어갔다. 감정을 쌓아나가는 영화가 아니어서 훈훈한 브로맨스도 등장하지 않는다. “감독님이 미국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를 참고하라고 했는데, 그 톤을 반영하다보니 너무 건조해서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더라.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게 ‘트루 디텍티브’보다는 업 시키고 보통 우리가 봐왔던 형사보다는 좀 다운시켰다.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 기대하기 마련인 브로맨스는 없다. 그게 나오게 되면 영화 톤앤매너가 흐트러지게 되니 더더욱 들어올 수 없었다.”
이번 영화에서 경찰청 채이도 경감 역을 맡은 그는 유달리 담배를 많이 피웠다. 영화 ‘하루’ 촬영 때부터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그는 ‘브이아이피’ 마지막 촬영때 금연에 돌입했다고 한다. “담배를 물고 말하는 게 장면이 많았다. 발음도 새고 불편하더라. 정말 구토까지 나올 정도로 담배를 많이 피워야했다.”
현장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 김명민은 장동건, 박희순, 이종석 세 명의 배우들 모두를 유연하게 이끌었다. 나무보다는 ‘숲’을 볼 줄 아는 베테랑 연기자의 자세는 현장에서 더욱 빛났다.
“촬영시간보다 훨씬 일찍가서 함께하는 스태프와 배우들 이름을 외워요. 오래전부터 해오던 거죠. 현장에 가면 내가 할 역할이 파악돼요. 이번 작품 속에서 난 여러 인물들과 다 붙어서 연기를 해야 했어요. 반면 세 배우들은 붙는 신이 많이 없었다. 이도는 모두와 맞붙는,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였고, 거기에 맞게 나 역시 현장에서 ‘분위기메이커가 된 듯 하다.”
한편, 범죄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영화로 떠오른 영화 ‘브이아이피’는 지난 23일 개봉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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