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 전날 가슴이 뛰는 것은 가보지 못한 먼 곳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명소는 가끔 푸대접을 받고는 한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가평군 귀목봉도 그런 산봉우리 중 하나다. 귀목봉은 청계산과 명지산 중간에 있는 봉우리(높이 1,036m)로 동쪽의 명지산, 서쪽의 청계산, 북쪽 강씨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숨은 명산이다. 다가오는 가을철 원행의 교통체증에 시달릴 일이 걱정이라면 서울에서 가까운 귀목봉이야말로 단풍철을 앞두고 기억해야 할 봉우리 중 하나다.
귀목봉 등정을 하려면 청평역에서 내려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가평군이지만 가평역에서 내려 자동차로 이동하면 38㎞ 거리에 50분이 소요되고 청평역에서는 30㎞에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다락터에서 하차한 후 귀목마을로 올라가 산행을 시작하는데 귀목계곡을 끼고 오르는 산행은 험하지 않은데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계곡과 소(沼)들이 예사롭지 않아 좋다. 귀목마을 앞의 입간판에는 귀목봉까지 2시간 거리지만 명지산 정상까지는 3시간을 걸어야 당도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숲이 깊고 그늘이 어두워 귀목이라는 이름이 ‘호러(horror)’ 스토리와 연관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귀목봉(鬼木峰)’이라는 이름은 봉우리 아래에 귀목마을과 귀목고개가 있어 붙은 이름일 뿐이다.
귀목봉까지 가는 등반로는 산의 높이에 비해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해 편하게 오를 수 있는데 다만 귀목고개까지는 경사가 가파르고 고개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진다.
하지만 오르는 길 내내 풍부한 수량의 옥수(玉水)가 흐르고 녹음이 우거져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해 더운 기운은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주말을 택해 산행을 했음에도 등산객들은 드물었다. 이곳이 반딧불이 서식지라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닌 듯싶었다. 귀목고개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등산객들을 만났는데 이들도 “귀목봉은 초행”이라며 오히려 우리에게 코스를 물어왔다.
비로소 귀목봉 정상에 올라서니 7시 방향에 청계산(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청계산과는 이름만 같음)이, 3시 방향으로는 명지산이 보였고 멀리 2시 방향으로는 화악산이 자태를 드러냈다. 경기 북부의 유명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1,036m라는 봉우리의 높이가 빈말은 아닌 듯싶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몰랐다. 진짜 산행은 내리막부터라는 것을. 장재울계곡으로 들어서자 길이랄 것도 없는 바윗길(너덜)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태가 난 것 같은 바위들은 이끼를 뒤집어쓴 채로 어두침침한 나무 그늘 아래 널려 있었다. 조심조심 바위를 밟고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미끄러운데다 거리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아 신경이 쓰였고 작은 바위를 잘못 밟으면 체중을 못 견디고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풍광 하나만으로 보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세(勢)를 불린 계곡 물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아래로 바위를 때리며 내려갔다. 그러다 웅덩이를 만나면 소를 이루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됐다. 산을 오르기 전에 이곳이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말을 들어 탁족까지는 못 했지만 바위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여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상쾌했다.
길은 험하지만 산악회들이 달아놓은 리본을 따라 이동하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하산 길 코스의 난도는 만만치 않은데다 인적마저 드문 것을 감안하면 노약자와의 동행이나 단독산행은 피해야 할 듯싶었다. 장재울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까지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잡초가 무성했다. 계곡 아래 마을로 내려오면 계곡들이 합류해 넓어진 하천변으로 자리를 만들어놓은 유원지들이 이어져 쉬었다 갈 만하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조무락골길 132. /글·사진(가평)=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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