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자본의 미국 반도체회사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백악관은 반도체 산업의 안보적 측면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대북 압박에 미온적인 중국의 태도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북핵 대응에 대한 미중 간 갈등이 무역·투자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간) 중국계 사모펀드 캐넌브리지의 래티스반도체 인수 건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지난해 캐넌브리지가 래티스반도체를 13억달러(약 1조4,67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이 거래는 중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으며 국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종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미국의 지식재산권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고 미 정부도 래티스사 제품을 사용하는 점을 이유로 덧붙였다. 캐넌브리지는 지금까지 미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 수차례 승인을 요청했다.
중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에 대한 제동은 올해 트럼프 정부 취임 이후 수차례 있었지만 미 대통령이 해외 기업의 인수 시도를 직접 저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5년간 미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인수 시도를 저지한 것은 네 차례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중국계 펀드의 독일 반도체 기업 아익스트론 인수를 미국 내 사업과 연관해 불허한 것이다.
중국계 펀드뿐 아니라 래티스사의 미국 경영진도 적극적으로 나서 성사시키려 한 이번 매각 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브레이크를 건 것은 최근 북핵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에 경고장을 날린 측면도 크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래티스반도체 매각 사례는 미중 외교관계가 어떻게 기업 협상의 세계로 전환되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대북 압박을 놓고 미중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이번 결정으로 당분간 중국 자본의 미 기업 인수합병(M&A)은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은 미국 송금회사인 머니그램 인수를 추진 중이며 충칭차이신그룹은 시카고증권거래소를 인수하기로 했지만 2건 모두 미 당국의 심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중국 자본이 잇따라 미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중 무역제재와 조사도 잇따르면서 중국이 대미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주 트럼프 정부가 래티스 인수를 불허할 경우 “중미 간 긴장이 심화하고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미 상무부는 이날 중국 기업들이 수출해온 공구함에 보조금이 지급된 것을 확인하고 17.3∼32.1%의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중국은 지난해 9억9,000만달러에 달하는 공구함을 미국에 수출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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