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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병주가 말하는 사랑의 관계성 그리고 자유…신간도서 ‘벨자를 쓴 여자’

인간과 사랑의 관계성, 사회 모순에 대해 통렬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가 장병주가 10년 만에 세 번째 신작 “벨자를 쓴 여자”로 돌아왔다. 자유, 죽음과 불륜을 소재로 기저에 묻힌 내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은 화제의 신간으로 많은 독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소설가 장병주의 작품세계와 근황에 대해 들어본다.





Q. 처음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결혼해서 10년 동안은 아이만 낳은 것 같다. 마지막 출산 때 아들을 낳고 안도했다. 넷째가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 날아갈 것 같았다. 딸 셋, 아들 하나, 시부모와 2대 독자로 자라 아무런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이 내 삶이었다. 어떤 여자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탈출을 꿈꿨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은 전무한 상태에서 바로 결혼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기쓰기와 책 읽기 뿐이었다. 그때 동생에게서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글을 추천을 받았고 이후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비슷한 종류의 작품을 탐독하게 되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글쓰기를 시작했고 94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았고 오직 글쓰기만이 나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등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절실함과 운이 따른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Q.“벨자를 쓴 여자” 제목이 인상적이다. 제목을 정하게 된 배경은?

실비아플라스의 소설 “벨자”에 영감을 받았다. 벨자 안에 갇혀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소극적이던 진희가 세상 밖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게까지 된다.

Q.주인공 진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부분은?

진희는 사랑을 믿었고, 배신당하고, 배신하는 우리네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인간이다.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한 사람들이 세월이 가면서 서로에 대해 진저리치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에게서. 아마 남자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지붕 밑에서 서로 상반된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졸혼이니 뭐니 그런 말이 생긴 것이 아닐까.

우리가 결혼할 때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오류를 범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랑이 가지는 이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희를 통해 결혼제도의 불합리성과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존재하는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Q.비판을 일으킬 수 있는 불륜이란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처음 창작집이 나왔을 때 내 책이 교보문고 서가의 밑바닥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어두운 곳에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로 행복했으니까. 책이 나와도 주변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냥 부끄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욕심이 생겼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을 출판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을 소재를 선택했다.

불륜, 금지된 사랑이 등장하지만 소설의 중심 초점을 거기에 맞추지는 않았다. 누구나 진희와 같은 상황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다 다르다. 진희가 내리는 선택에 대해 독자는 동의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진희는 자신의 꿈을 파괴한 성준에게서 이미 마음이 돌아선 상황이었고, 살얼음 같은 결혼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치열하게 사유한다.

Q.엔딩이 여운이 많이 남는다. 최근 이슈가 되는 존엄사, 웰다잉에 대한 생각은?

결혼했을 때 치매상태의 시할머니가 계셨다. 집안에 치매를 겪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서로 아낀다 해도 온 식구가 고생하게 된다. 사실 그 당시 시어머니와 간병인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실질적으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들의 고통에 영향을 받았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라서 바로 친정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을 생전 처음 목격한 나는 너무 무서웠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생경한 공포를 느꼈다. 아직도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다. 그 후에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또 친정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존엄사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남은 이를 괴롭히지 않고 내 자신을 지키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전의료의향서 발급 외에 존엄사를 준비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신간도서 “벨자를 쓴 여자”에서는 진희를 통해 죽음을 자유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Q.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다음에는 일상을 다룬 가볍고 밝은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풍자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소설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독자가 삶에 대해 질문하고 다양한 각도로 사회를 바라보는 데에 도움을 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


/김동호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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