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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시장의 실패, 정부의 실패

권구찬 논설위원

확증편향과 과도한 가치추구는

예측 가능한 결과마저 간과

파생적 외부효과까지 고려하고

균형 맞춰야 정책오류 최소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달 초 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외환위기를 시장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장하성 실장은 “외환위기 때처럼 시장이 실패해 국민이 고통받을 때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외환위기는 시장의 실패인가 아닌가. 금융권이 묻지마 해외 차입하다 몰락했고 대기업 역시 방만 경영의 부메랑을 맞았다. 이것은 시장의 실패다. 그럼 정부의 실패는 없었는가. 당시 당국은 경제 펀더멘털 양호 운운하다 달러 금고가 비는 줄도 몰랐다. 국제금융시장의 메커니즘에는 완전 까막눈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느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도 원인(遠因)이다. 이는 정부의 실패다.

장 실장이 외환위기의 실체와 원인을 모를 턱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장 개입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다. 정부의 실패를 애써 외면한 것은 와튼 출신의 ‘똑똑한 분’답지 않다. 자신이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취하는 ‘확증편향’의 오류가 아닐까. 만약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라면 과연 그렇게 말했을까 의문도 든다. 100% 시장의 실패도, 완전한 정부의 실패도 무 자르듯 구분하기는 어렵다. 대개 복합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다.

그가 쓴 ‘한국 자본주의(2014)’는 남다른 분석이 빛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다 말았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불균형과 양극화라는 스펙트럼에서만 투영해서다. 사례들은 속된 말로 끼워 맞추기 같다는 생각에 읽기 부담스러웠다. 빤한 대목은 건너뛰고 결론을 봤지만 ‘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라는 대목에 이르면 공허해진다.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각양각색의 분석은 다다익선이다. 그것은 학자의 소임이다. 하지만 학자 때의 소신·철학과 공복으로서의 정책은 별개다. 현실 수용성과 실현 가능성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비견한 예로 그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소득불균형 해소를 위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글을 쓸 당시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했다가 어떤 홍역을 치렀는가. ‘고통 없는 거위 털 뽑기’ 이 말 한마디에 시쳇말로 쫄딱 망했다. 이뿐이랴. 연말정산 때 또 한 차례 파문 끝에 세법을 다시 수정해야만 했다. 이게 현실 정책이다.



‘파생적 외부효과’라는 게 있다. 독사 퇴치를 위해 뱀을 잡아오는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 주민들이 죄다 뱀을 사육했던 것이다. 정책은 독사의 역설처럼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하물며 부작용과 허점이 뻔히 보이는 정책을 과속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제로화 같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초래한 후유증은 현재 진행 중이다. 생산성 증대 없는 임금 인상이 지속 가능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 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제 막 몇 발자국 뗀 정책을 두고 정부 실패를 말하기는 이르다. 다만 확증편향에 빠지거나 맹목적 가치추구에 집착하다 보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결과조차 간과하게 된다. 최적보다 코드가 우선이고 철학과 이념 앞에 현실은 깡그리 무시하게 된다. 이는 정부의 실패로 가는 길이다.

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와 혁신성장의 병행론을 새삼 강조했다. 이제라도 균형을 잡겠다니 다행이지만 혁신성장의 개념 파악을 주문한 것을 보면 뒷맛이 남는다. 혁신성장에도 ‘한국 자본주의’처럼 정부 주도론을 덧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다. 시장을 치유하려다 정부의 개입이 실패하면 병은 덧나고 고질이 된다. 시장의 실패보다 고치기 어려운 게 정부의 실패가 아닌가.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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