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전 양평군 용문면 마룡리라는 낯선 곳으로 이사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마당에 나무를 심고 철마다 꽃들도 번갈아 가며 가꾸었다. 비슷비슷한 생각을 갖고 온 이웃들도 생겼다. 이제 그곳에서 펼쳐질 소소한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으려 한다
서울시 중구 통일로에 있는 회사에서 75km 떨어진 양평군 용문면으로 귀촌.
지난해 3월쯤 집을 짓기 시작했다. 황량하기 그지없던 땅 위에 기초를 치고 목재가 하나둘 올라가며 조금씩 모양을 갖춰갔다. 신기하기도 했다. 집이란 형태가 꼴을 갖추려면 수만 가지의 공정이 들어가고 많은 분들의 땀이 배여야 한다는 것을. 석 달이란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봄이 오듯 우리 가족에게도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로 집의 뼈대를 만들어 지진에도 안전하단다. 일본이 목조로 주택을 짓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집 지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목수님들, 현장소장님이랑 같이 막걸리 마시던 때가 그립다.
신도시의 편리함을 버리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살아갈 집과 앞으로의 계획 등등. 와이프 하고는 이미 마음이 맞았던 게 있었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집 앞 학교, 도서관이 있었고 정든 친구들도 많아 두 딸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특히 아이들 교육 문제가 걸렸는데, 큰 아이는 당장 학원은 어떡하느냐고 나름 공부에 대한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마치 공부는 학원에서 해야 한다는 것처럼. 중학교 입학 전 가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고 큰 딸을 ‘세뇌’ 시켰다. 대학도 농어촌특별전형으로 가자며 나름 ‘전략’을 제시했다. 지금은 2년째 중학교 다니며 잘 적응하고 있다. 둘째는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라 크게 걱정 안 하지만. 사실 외지 지역이라 선생님들이 학생들 학업 등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챙겨 주셔서 공교육에 대한 ‘작은 믿음’도 생겼다.
그리고 이곳은 ‘나홀로 주택’이 아니라 그렇게 외롭지 않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지나가며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 이웃들 중엔 벌써 낚시 동아리도 만들어 주말 아침 와이프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나는 이곳까지 와서 이웃 2명과 함께 사회인야구에 가입해 아주 가끔 핀잔을 받는다. 집이랑 가까운 곳에 야구장이 있어 경기 후 가볍게 한잔 하고 가는 여유를 부려서 말이다. 생각보다 빨리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아직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는 아니지만 이웃과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 입학 전 아이들도 제법 있어 주말 아침엔 조용할 것 같기만 한 골목길이 와글와글하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모두 삼촌, 이모로 불린다. 동생뻘 부부에겐 형님, 형부로. 참 정겹다.
어느덧 이곳에 정착 한지도 1년이 됐지만 불편한 점이 많다. 직접 집을 관리하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교육 때문에 다시 도시로 나간 이들도 적지 않다. 큰 딸도 중학교는 어떻게 다녀 보겠지만 내년부터 고등학교 준비가 당장 문제다. 처음부터 이런 문제점들을 예상 못하고 온 건 아니다. 이웃들과 머리 맞대 저마다의 고민들을 풀어가면 될 터이다.
닭 대신 새벽마다 짖어대는 고마운(?) 강아지들, 맛있게 익어가는 집 앞 배 과수원, 도시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 그리고 쉽지 않은 겨울철 눈 청소도 이제 익숙한 생활이 됐다. 주변 풍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지만 이웃과 정들어가는 시간은 변하지 않길...
/최남호기자 yotta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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