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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코칭]나는 새이고 싶다

동봉 스님 곤지암 우리절 주지

하늘과 땅, 남과 북, 바다와 육지

어디서나 자유롭게 훨훨 날듯

사람 사이서 희망 전하고 싶어

동봉스님




새는 ‘사이’다. ‘사이’를 줄여서 ‘새’라 한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자유롭기에, 바다와 육지 사이, 남녘과 북녘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어디서나 자유로운 존재, 새가 된 것이다.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나는 새이고 싶다. 언제든지 가고 싶으면 가고 내리고 싶으면 내려앉고, 나뭇가지 위에서 졸고 있더라도 게으른 녀석이라고 타박할 이 없는 나는 한 마리 새이고 싶다.



이왕이면 1억5,000만년 전, 쥐라기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시조새가 되고 싶다. 부리에 난 날카로운 이빨은 어떤 것이라도 다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니 경제가 어려운 요즘에는 딱 어울리는 생존 시스템이다. 새가 되고 싶다. 나는 시조새가 되고 싶다. 파충류의 갈비뼈를 지니고, 도마뱀의 엉덩이를 갖고 싶다. 보드랍고 강한 깃털과 함께 많은 뼈로 이뤄진 긴 꼬리 끝에 세 개의 발가락과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 진화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왜냐하면 시조새의 모습으로는 저 넓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없는 까닭이다. 자유롭고 싶다. 그냥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마저도 훌훌 벗어나는 높은 비상을 하고 싶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삼천리 파도를 일으키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날아올라 여섯 달 동안 날아가는 장자의 한 마리 붕새이고 싶다.

아니다. 청조(靑鳥)이고 싶다. 이른 새벽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하늘을 마음껏 조롱하는 청조이고 싶다. 봉조(鳳鳥)이고 싶다. 한낮 남녘 하늘에 솟은 뜨거운 해를 가려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나는 봉조이고 싶다. 백조(白鳥)이고 싶다. 저녁때 붉은 낙조를 드리우는 구름을 벗 삼아 백조이고 싶다. 현조(玄鳥)이고 싶다. 한밤중 어둠 속에서 잠을 방해하는 친구들을 조용히 잠들게 하는 한 마리 현조이고 싶다.

샛바람 불면 샛바람 타고, 마파람 불면 마파람 타고, 하늬바람에 몸을 맡기고, 높새바람에 뜻을 맡기며 마음대로 훨훨 날고 싶다. 청조·봉조·백조·현조이고 싶었으나 날갯짓 한 번에 쓰이는 열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냥 까마귀이고 싶다. 남들은 뭔가를 잘 잊어버리면 ‘까마귀 고기를 먹었느냐’ 하지만 그 숱한 새들 가운데 은혜를 알고 은혜 갚을 줄 아는 두뇌가 가장 발달한 까마귀, 나는 한 마리 까마귀이고 싶다.



새는 ‘사이’의 줄임말이다. 나는 ‘사이’의 새가 되고 싶다. 시조새가 아니어도 좋다. 붕새가 아니어도 좋다. 청조가 아니면 어떻고 봉조가 아니면 어떠하랴. 백조가 아니고 현조가 아니고 까마귀가 아니면 또 어떠하랴.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 높은 자와 낮은 자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아내와 남편 사이, 형제, 남매, 자매, 숙질, 조손 사이,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사랑을 물어다 주는 새, 대화의 물꼬를 트는 새, 희망과 기쁨과 행복을 속삭이는 새, 그런 한 마리 새이고 싶다.

지난 5월 큰 선거를 치르고 엊그제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치렀다. 사이는 아직 아물지 않은 채… 하늘(天)과 땅(地) 사이(間), 때(時)와 틈(空) 새(間), 특히 사람(人)과 사람 사이(間) 어떤 새가 되면 좋을까.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이 글을 실었다. 제목이 ‘누구는’인데 함께 나누고 싶다.

누구는/어찌 그리 게으르게/벌레도 잡아내지 않느냐 하고/어떤 이는/벌레가 먹고 있으니/틀림없이/내가 먹어도 맛있는 배추라고 한다/잡을 만큼 잡다가/안 되는 것은 하지 않고/못하는 것은/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누리에/함께 사는 모양이다/그 뿐인가/신이 창조한 붓다라고도 하니/붓다의 가르침 따라야/윤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불교는/대한이와 한국이가 다투고/기독교는/그리스도와 예수가 시야비야 한다/하기사/알라 여호와 한울이/같다는 말도 하고/다르다는 말도 한다/양파 쪽파 대파에 실파/누리에 그득한 파들/맛이 같은 듯 다르다/맛이 다른 듯 같다/그렇고/그렇다

10/13/2017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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