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추석 명절에다 개천절과 한글날이 겹쳐 사상 유례없는 긴 연휴를 보냈다. 긴 연휴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연휴를 뜻깊게 보낸 사람은 시간 선물을 받았다며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반면 연휴를 힘겹게 보낸 사람은 시간 폭탄을 맞았다며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자의 경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하지 않고 오랫동안 쉴 수 있다면 보통 그 시간을 반기기 마련인데 괴로웠다고 한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이 있으면 문제가 있고 문제가 있으면 해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후자의 원인은 여러 갈래에서 생겨난다. 소상공인은 연휴 기간에 영업을 하지 못해 높은 임대료에 수익이 미치지 못한다고 불만이고 제조 업체는 생산 물량을 맞추지 못해 거래에 차질이 생길까 봐 우려한다. 또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가는 바람에 국내 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이 중에는 10월 초 연휴가 갑자기 닥친 일이 아니라 미리 예정됐던 만큼 대비를 잘하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측면도 있고 여가를 보내는 시민들의 생활 방식이 변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불가피한 측면은 앞으로 장기적 방안을 세워 고통을 줄여야 한다.
10월의 긴 연휴에 추석이 들어 있던 만큼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의 방식도 고통의 원인에서 빠질 수가 없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마련하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과 친척을 위해서도 음식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명절 하면 즐겁다기보다 해야 할 일 때문에 걱정을 하고 실제로 명절이 지난 뒤 불협화음이 터져 나온다. 최근 과일과 떡 위주로 제사상을 차려 간소한 추석을 보내 화제가 된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찬반 의견이 갈린다. 조상을 모시는 추석에는 대대로 지켜온 전통이 있는데 차례상을 산 사람 위주로 바꿀 수 없다며 반대하는 측도 있고 실제로 먹지도 않는 음식을 하느라 비용과 노동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며 찬성하는 측도 있다.
이제 제사상을 차리는 방식은 개별 가정에서 티격태격 싸우거나 불만은 있지만 그냥 조용히 덮고 지나갈 수는 없다. 명절 하면 고통을 연상할 정도로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공동체 차원에서 논의해 해법을 마련하면 개별 가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게 되면 공동체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진시황은 전국시대를 통일해 제국을 세운 황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진나라는 당시 서쪽 변방에 있던 후진국이었다. 진나라의 약진은 진시황 이전부터 추진돼온 각종 제도개혁이 결실을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효공(孝公)과 상앙의 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효공은 진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혁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을 조정에 모아놓고 대토론회를 벌였다. 지금 전해지는 ‘상군서(商君書)의’ 첫 편인 ‘경법(更法)’을 보면 대토론회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반대 측은 ‘이익이 백 배가 되지 않으면 법을 바꾸지 않고 효과가 열 배가 되지 않으면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쳤다. 찬성 측은 백성들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라면 기존의 법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때 효공을 움직인 한 마디 말이 있었다. 개혁에 찬성하는 상앙의 말이었다. “해야 할 행동을 망설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해야 할 일을 망설이면 아무런 업적이 없다(의행무성·疑行無成, 의사무공·疑事無功).”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더라도 개혁을 추진하자니 반대가 부담되고 또 미래의 결과가 불확실하다. 이러한 시간이 지속되면 변화를 바라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효공은 부담과 불확실의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진나라의 통일을 일궈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제사 문제도 방치하지 않고 공동체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명절 하면 고통을 연상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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