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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소시오패스만이 실리콘밸리서 성공한다?

■카오스 멍키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비즈페이퍼 펴냄

경쟁자 아이디어 도용한 빌 게이츠

프로젝트 보너스 가로챈 잡스 등

美 IT거물들의 숨겨진 일화 공개

"스타트업은 남 돈으로 하는 실험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 된다"

실리콘밸리 작동원리 민낯 보여줘





매주 스타트업의 성공 길잡이를 자처하는 책들이 쏟아진다. 스스로 스타트업 멘토를 칭하는 이들의 조언, 스타트업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등을 소개하는 글, 이를 공유하는 자리도 넘쳐난다. 대부분은 창업자들에게 뼈와 살이 될 이야기지만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처럼 따분한 것들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실리콘밸리의 ‘내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가 쓴 ‘카오스 멍키’는 신랄한 뒷담화 속에 교묘하게 교훈을 숨긴 스타트업 실용서다. 물리학 박사 출신의 골드먼삭스 퀀트전략가에서 광고 스타트업의 창업가로 변신하고, 페이스북 제품관리자에 이어 트위터 고문, 이후에는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를 신랄하게 까발리는 글쟁이로 활동하고 있으니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창업의 요람으로 꼽히는 실리콘밸리의 민낯을 들출 자격은 충분하다.



책의 제목인 ‘카오스 멍키’는 넷플릭스가 온라인 서비스의 견고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제작·배포한 소프트웨어다. 보통의 IT 기업들은 최악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시스템이 각종 문제를 견뎌내는지 테스트하고 오류를 수정하는데 저자는 교통(우버), 숙박(에어비앤비), 텔레비전(넷플릭스), 연애(틴더)까지 인간 삶의 면면을 시험하고 바꿔놓은 IT 기업들을 사회의 카오스 멍키에 빗댔다. 물론 제목은 중의적이다. 저자 자신도 다른 의미에서 카오스 멍키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를 소시오패스라 부르고 폴 그레이엄, 셰릴 샌드버그 등 유명인사는 물론 그와 동업했던 인물과 동료들, 투자자까지 실명을 들며 품평하고 일기를 쓰듯 온갖 일화와 감상을 공개했으니 그가 이 글을 블로그에 연재하던 당시 얼마나 실리콘밸리를 뒤흔들어놨을지 짐작해 볼만하다.

인간에 대한 배려나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표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긴 하지만 저자는 탁월한 글쟁이다. 금융위기 직전 월스트리트가 판매에 열을 올렸던 신용부도스왑의 원리를 설명하며 차 도둑이 차를 훔치기 전 보험을 들어 양쪽에서 이득을 보는 상황에 빗댄다든지, 브랜드 광고의 효과를 개종 과정으로 설명한다.



스타트업계의 하버드로 통하는 와이콤비네이터에 합격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가 전하는 교훈은 될성부른 스타트업이란 기적이 한 번만 일어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형편없음을 알리는 고전적인 신호는 두 가지(혹은 그 이상) 기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가 창업한 애드브로크는 초기 단계에서만 다섯 번의 기적이 필요했지만 동업자들의 뛰어난 기술력, 투자자와 인수후보에 밀리지 않는 저자의 협상력, 끊임없는 방향전환 시도(피봇)를 통해 트위터에 500만달러 이상에 매각됐고 이 과정에서 큰 수익을 얻었으니까.

실리콘밸리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저자가 전하는 실리콘밸리의 작동원리는 그래서 더 와 닿는다. 투자자는 시간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이고 직원은 돈보다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인데 사업가는 단순히 이들을 연결해주는 매력적인 중개인이라는 것. 스타트업이란 남의 돈으로 해보는 사업 실험이라는 것.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것. 성과주의란 어두운 뒷모습을 가리기 위한 화려한 단어에 불과하다는 것. 나아가 자본주의는 투자자, 직원, 사업가, 소비자 등 모든 당사자가 공모하고 꾸미는 도덕을 초월한 익살극이라는 것이다.

후반에 이르며 실리콘밸리의 성공에 대한 그의 냉소는 극에 달한다. 보통 성공의 이유는 상황이 벌어진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데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반쯤 장님인 이가 저지른 ‘도박’이 확신 가득한 선지자가 실천한 당연한 ‘혁신’으로 탈바꿈해버린다는 것. 그는 “소시오패스가 돈을 버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은 창업”이라고 단언한다. 운영체제를 만들어달라는 IBM의 의뢰에 경쟁자인 킬달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빌 게이츠,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무리한 일정의 프로젝트를 떠맡긴 후 중간에서 보너스를 가로챈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든 윙클보스 쌍둥이를 등쳐먹은 마크 저커버그의 일화에서 기회가 찾아왔을 때 거리낌 없이 남을 속이고 착취한 이들이 성공을 거머쥐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성공만큼 실패도 한순간이다. “실리콘밸리의 명성과 권력의 계단에는 기름칠이 되어 있다. 누구든 올라가려 노력할 수 있지만, 굴러떨어질 때 받쳐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냉혹한 성공과 실패의 원리가 실리콘밸리에만 있겠는가. 그런데도 창업을 하려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동업자들과의 관계 설정과 지분 배분부터 인수 협상과정에서 단기간에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법, 페이스북 채용 과정 통과 방법까지 그가 몸소 겪은 성공과 실패의 분투기가 교훈이 될 것이다. 2만5,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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