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건설중단 공약을 내건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재개로 결론 나면서 노동 등 다른 경제정책 추진에도 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추진했던 공약이 국민들로부터 제동이 걸리는 첫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고리 사태’에서 여실히 확인된 것처럼 정책 방향성이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현실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파장을 고려해 다른 경제정책도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고리만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정책, 법인세 인상, 공무원 증원 등에서도 정밀한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건설 재개, 국민이 저지한 첫 공약=공론화위의 건설 재개 권고안은 문 대통령의 공약을 국민이 저지한 첫 사례가 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이후의 모든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를 내걸었다. 현 정부 출범 5개월여 만에 굵직한 공약을 선회하는 첫 번째 사안이 됐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건설 재개 의견이 중단보다 19%포인트 이상 높게 나온 것은 정책을 급하게 펴지 말고 시장원리도 고려하라는 뜻”이라며 “다른 경제정책들에 대한 논란도 많은데, 청와대로서는 추진할 때 이번 일을 간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단순하게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91개가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 야당에서 이번 결정을 계기로 청와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추진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민간기업 기간제 근로자 고용 원칙적 금지, 근로시간 단축(주당 68시간→52시간) 등의 관철이 어려워질 수 있다. 노동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 삶의 질 제고 등의 이유로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기업과 야당을 중심으로 갑작스러운 시행은 기업의 고용을 오히려 위축시키고 비용 부담만 낳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정책·법인세 속도 조절 필요=국정감사 이후 본격화할 ‘세법 전쟁’에서도 추동력을 잃을 수 있다. 정부는 첫 세법개정안인 만큼 초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핀셋 증세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반드시 관철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인세는 미국·일본 등 세계 각국이 내리는 마당에 우리만 높인다면 산업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반대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소득세 역시 올해부터 세율 인상이 적용됐는데 효과를 검증할 틈도 없이 내년에 또 올린다면 조세저항이 커지고 고소득자의 해외 이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큰 실정이다. ‘예산 전쟁’에서도 전선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공무원 증원 예산을 반영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수백조원의 인건비·공무원연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반론이 많고 아동수당 역시 모든 가정에 주기보다 선별적으로 줘야 한다는 수정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공론화위 권고안이 문 대통령 경제정책 수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현 노동정책이 기업에 부담을 주고 노동의 양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며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고위관계자는 “대선 때는 표를 더 얻을 수 있는 공약은 앞뒤 안 가리고 내놓을 때 아닌가”라며 “유권자도 공약보다는 사람을 보고 투표한 경우가 많으므로 공약은 합리적인 선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