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31일은 우리 경제의 ‘해운 대동맥’이 끊긴 날이다. 국내 최대, 세계 7위 원양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곧바로 물류대란이 일었다. 선박 압류와 입항 거부가 속출하고 압류를 피하기 위해 한진해운 선박들은 공해상에서 대기해야 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당시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는 그해 열린 국정감사에서 당시 김영석 장관에게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를 책임져야 할 해수부가 해양수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질타했다. 해수부가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해운업 현실을 모르는 금융당국에 휘둘리지 말고 주무부서인 해수부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뼈 있는 일침이다.
그랬던 그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해수부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의원 시절 강조했던 ‘해수부 자강론’은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해운 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을 담당할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이 가장 대표적이다. 100대 국정과제 중 해수부 단독과제만 3개, 다른 부처와의 협력과제도 9개에 달할 정도로 해수부의 위상은 높아졌다. 지난 20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 장관은 해양진흥공사를 활용해 어떻게 해운업을 재건해나갈 것인지 자신의 구상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자신의 재임 기간에 반드시 해내겠다는 범부처 차원의 국가 해양전략을 수립하는 국가해양전략위원회 진척 상황부터 일본과의 해양수산 갈등의 해법까지 해수부의 굵직한 국정과제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담=이현호 경제부 차장 hhlee@sedaily.com
2월 최종 파산한 한진해운의 여파는 아직도 여전하다. 한진해운 파산 전 105만TEU(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달한 국적선사 컨테이너 선복량은 현재 47만TEU로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11.3%였던 미주 노선 점유율 역시 5.8%로 내려앉았다. 경영자와 투자자, 여기에 보증을 서주는 정부기관도 최근까지 국내 해운업에 대한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피폐해진 해운업계가 직면한 현실이지만 해수부가 서둘러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긴급 진화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해운업 재건의 시작은 해양진흥공사가 주도해 각종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국내 해운업이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시장에 심어주는 것”이라며 “레퍼런스가 쌓이기 시작하면 궁극적으로 민간이 해운업을 믿고 투자하고 사업을 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게 하려면 국내 해운 산업에서 연 5% 수준의 수익률이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해양진흥공사가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면 그 선박을 민간이 저렴하게 임대해 사업하고 그 과정에서 금융기관들도 참여해 연 5%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며 “이 사업이 성공하면 민간에서 국내 해운업에 투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확산돼 최종적으로 한국에서도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해양금융 산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같은 프로젝트 구상은 국가필수해운제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김 장관의 생각이다. 국가필수해운제도는 국가가 선박을 제조해 민간에 임대했다가 유사시 차출해 화물을 수송하는 제도다. 김 장관은 “현재 국내 88척이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돼 있는데 최근 해운업계가 어려워지면서 76척으로 줄었다”며 “해수부가 해양진흥공사에 위탁해 선박을 제조하게 하고 민간에 좋은 조건으로 임대했다가 전쟁 등 유사시에 징발하는 방식으로 해양금융산업 부흥 프로젝트와 연결시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같은 방식으로 정부와 선주·화주 기업이 참여하는 상생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다. 다음달 연구용역에 착수한다. 펀드를 통해 조선소에는 부족한 일감을 줄 수 있고 선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선박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펀드가 이익이 나면 화주에도 배당을 하기 때문에 모두 윈윈하는 구조다. 김 장관은 “구체적인 체계와 운영방식은 연구용역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초기에는 정부가 역할을 많이 하고 궁극적으로는 민간의 역할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해양전략위원회에 대해서는 재임 기간 동안 출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가해양전략위원회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해군·기상청 등 정부 부처와 전문 연구기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해운산업 재건과 해양·해운·수산을 총망라해 지원하는 조직이다. 김 장관은 “수출·수입 항로 보호는 해군이, 영유권 분쟁은 외교부가, 해저 자원 개발은 산업부가 맡는 등 해양을 중심으로 국가의 이익을 논의하는 국가해양전략위원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라며 “취임 초기에는 대통령 공약을 중심으로 국정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미뤄뒀다면 이제는 국무총리,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러시아 극동지역과의 해양수산 협력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러시아 동방 경제포럼에 참석해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위해 필요한 9개의 다리 중 해양수산 분야에서만 △수산 △항만 △북극항로 개발 3개가 있다고 언급했다. 함께 참석했던 김 장관은 일리야 셰스타코프 러시아 수산청장 등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 블라디보스토크에 1,330억원 규모의 민간기업 수산물류가공 복합단지 구축을 논의하고 왔다. 김 장관은 “우리가 러시아에 수산물류가공 복합단지를 조성해주면 러시아는 한국에 명태를 비롯해 러시아 수역의 어획 쿼터를 늘려준다는 구상”이라며 “국내 민간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증을 서줄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끝까지 돼봐야 알겠지만 러시아가 군사 지역으로 돼 있는 해당 부지를 비즈니스 지구로 풀어준다는 약속을 한 만큼 제 느낌에는 80%는 성사된 것 같다”며 “수산 협력이 성과를 내면 더 큰 프로젝트인 항만 개발과 북극 항로 개척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한일 어업협정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일본의 어획량이 더 많거나 비슷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일본에 10배나 돼 일본은 핑계만 있으면 안 하려 한다”며 “대체 어장으로 대만의 갈치어장 개발을 추진하는 등 우리 측 협상 여건을 개선해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판결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김 장관은 “일본 측에서는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한일 어업협정과 후쿠시마 수산물 문제를 묶어 대화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카드로 연결시키는 것 같다”며 “해수부 차원에서 결정하기는 힘든 문제지만 만약에 일본산 수산물의 안전성이 검증되고 국민 건강에 위해를 줄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정치적 접근으로 이 문제들을 풀어낼 수도 있다”고 제시했다.
김 장관은 김을 필두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수산물 수출 전망은 매우 밝다고 했다. 올해 수출 성과에 주목해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고품질 수산물을 해외 소비자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수산물 수출통합 브랜드 ‘K-FISH’처럼 수산업의 고부가 가치화를 위해 프리미엄 수산식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해외시장 다변화를 위해 베트남·대만 등 유망시장에 시장 개척단을 파견하는 등 수산물 수출 확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올해 25억달러 규모의 수산물 수출 달성이라는 최대 실적이 기대된다”고 자신했다. /정리=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약력]
△1962년 부산 △1980년 부산동고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1989년 고려대 영문과 △1991년 고려대 정치학 석사 △1993~1994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실 행정관·비서관 △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 △2004~2008년 제17대 국회의원 △2004~2005년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원내수석 부대표 △2005~2006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2007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2010~2011년 민주당 최고위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2016~2017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2017년6월~ 해양수산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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