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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표' 눈치에 밀려난 원칙과 철학

경제부 임진혁 기자





기획재정부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 회의 중계방송을 보며 대기 중이던 기재부 공무원들이 한바탕 술렁였다.

‘아이코스’ ‘글로’ 등 궐련형 전자담배 개별소비세 인상안을 처리하면서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품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부가 최대한 노력한다’는 부대 의견을 넣자”고 제안한 직후였다. 회의장 주변에서는 ‘정부가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같은 당황스러워하는 반응과 탄성이 들렸다.

더 놀라운 것은 정부와 여당의 대답.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동의하고 여당 간사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이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자칫 정부가 민간기업의 가격정책에 개입하는 위험한 공식의견이 채택될 상황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이 ‘아주 이상한 부대 의견’이라며 제동을 건 뒤에야 없던 일이 됐다.

그대로 통과됐다면 어땠을까. 분명한 것은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내도, 내지 못해도 문제라는 점이다. 제조원가는 그대로인데 세금이 오르면 전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담배 제조사의 제품값 인상을 강제로 막는다면 이는 명백한 경영권 침해이자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정부의 노력에도 가격이 올랐다면 소비자들로부터 ‘무능한 정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애초부터 정답이 없었던 부대 의견에 제1야당과 여당·정부가 한목소리를 낸 건, 원칙과 철학을 무시한 채 그저 애연가들의 원성에서 살짝 비켜 가려는 꼼수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특히 이번 개소세 인상은 궐련형 담배가 마땅한 규정이 없어 일반 담배의 절반 수준 세금만 부과하던 과세 공백을 없애는, 형평성을 위한 조치였다.

‘조세 정의’를 설명해도 모자랄 판에 여야와 정부가 여론 눈치만 본 것이다. 담뱃값 상승이 그렇게 못마땅하다면 한국당은 왜 지난 정권 때 대폭 올렸고, 세수 풍년을 누리는 정부·여당은 왜 다시 내리지 않을까. 그렇게 국민 주머니가 걱정되면 지금껏 담뱃값 인상의 이유로 든 ‘국민건강증진’은 무엇인가.

한국당은 강령에서 ‘정부의 시장개입 최소화’를, 민주당은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얘기한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담뱃값을 지켰다고 한 표 더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 국민은 지난해 ‘촛불’을 통해 정부의 원칙과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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