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의 이 메시지는 배우 문근영이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유리정원’ 안에는 실제 문근영의 고민과 삶이 상당부분 녹아있다. 자전적인 동화라고도 할 수 있다.
‘유리정원’은 홀로 숲 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 재연(문근영)을 훔쳐보며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쓰는 무명작가 지훈(김태훈)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에 밝혀지게 되는 충격적인 비밀을 다룬 미스터리 드라마.
재연은 믿었던 세상에서 생채기만 잔뜩 안고서 유리정원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그 곳은 곧 재연의 유일한 안식처. 문근영에게 유리정원과 같은 곳은 어디일까.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문근영은 “나에게는 ‘이 영화’가 유리정원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 연기적인 측면에서 고민이 많았던 때였다. 지치는 부분도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서 후회도 있었고 포기했던 부분, 너무 쉽게 따라갔던 부분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재연이처럼 그 어떤 때보다 유리정원 안에서 마음 편하게 연기했던 것 같다. 연기와 재연이, 나만 오롯이 생각하며 연기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해 깨고 싶던 발악이 연기로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간으로 ‘유리정원’을 꼽은 문근영은 사람으로서 가장 위안 받는 존재로 ‘엄마’를 언급했다. “엄마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사소한 얘기부터 깊은 얘기 등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누는 것 같다. 아무래도 친구와는 100% 얘기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 엄마와는 부족한 것까지 내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다. 엄마에게 조언 받으면서 위로도 받고, 언제나 내 편인 것 같은 믿음이 있다.”
예술가는 고독하다. 배우 역시 그에 벗어나지 않는 직업이다. 1999년 13세 나이로 연기한 영화 ‘길 위에서’가 첫 작품이었다. 이듬해 드라마 ‘가을동화’로 얼굴을 알린 후 2003년 영화 ‘장화, 홍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바람의 화원’ ‘신데렐라 언니’ ‘매리는 외박중’ ‘청담동 앨리스’ ‘불의 여신 정이’로 안방극장을, ‘어린신부’ ‘댄서의 순정’ ‘사랑따윈 필요없어’ ‘사도’로 스크린을 모두 누볐다. 각종 신인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최우수연기상, 대상 등을 고루 휩쓸며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믿고 보는 여배우로 성장했다.
문근영이 ‘고독’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며 바라본 재연은 이렇다. “재연이가 다수에 의해 소외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연이가 주장했던 게 틀린 이야기가 아닌데, ‘지금은 그걸 이뤄내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등등으로 하나의 의견이 묵살되고 소외된다. 다수의 선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스스로 문제인 것처럼 느낀다. 그런 부분이 창작하는 사람에게도 있는 부분이겠다.”
문근영 하면 여전히 ‘국민 여동생’이라는 애칭이 따라다닌다. 워낙 동안인데다 순수하고 티 없는 이미지 덕에 성인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동생’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 같은 ‘어린 취급’이 한편으론 한정적인 이미지로 굳힐까 두렵기도 했겠다.
“싱그러운 이미지가 지금은 장점인 것 같다. 예전에는 한 가지 이미지로 한정지어지는 게 싫어서 다른 색을 칠해보려고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을 달리 한다. 여전히 그런 마음도 있지만 내가 나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색깔도 알고 있어야 더 푸르게 만들 수도 있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도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해보고 싶은 건, 밝고 경쾌한 것, 따뜻한 걸 해 보고 싶다.”
문근영은 지난 2월 갑작스레 찾아온 급성구획증후군으로 7개월간 4번의 수술과 함께 짧지 않은 공백기를 가졌다. 그 기간을 거친 후 이전과 작품 보는 관점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벽이 사라진 느낌이다. 예전까지는 사람들이 만든 벽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의지였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에서는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식의 벽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역부터 꾸준히 해오던 덕도 있지만, 문근영은 언제나 진실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그 비결을 물으니 “진짜처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1번이다. 애정과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 했다”며 “캐릭터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때는 괴로운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는 당시 개막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언급하며 ‘벼랑 끝에 매달린 기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 때가 문근영 연기 인생에서 가장 권태 지점이었는지 모른다. “연기를 언제부턴가 관성적으로 하고 있더라. 마음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촬영 들어가다 보니 내가 가지는 감정에서 재단을 하고 있더라. 아주 옛날에는 연기를 위해 나와 싸웠다면 언젠가 이게 바뀌었더라. 사람들이 ‘연기 못 한다’는 얘기도 직접적으론 잘 안 하니까 어느 지점에서는 ‘못 하지만 않았으면 됐지’ 안일한 생각도 했다. 스스로 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한 마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계속 머물러 있고 안주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싫었다.”
그러한 시기를 거친 문근영은 이제 힐링 방법을 좀 찾았을까. “예전엔 스스로 더 잘하라고 부추겼던 것 같다. 더 자극적인 캐릭터, 상황을 찾았다. 도움이 된 적도 있지만 독이었던 순간도 있었다. 다른 차원일 수 있지만, 요즘에는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도 어느덧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투병으로 고생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을 문근영. 올해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시간이 훅 지나갔더라. 나에게 마음의 짐, 부담감을 덜어낸 느낌이었다. 항상 나는 변하려 했던 것 같은데 ‘이런 게 변할까’ 싶기도 했고, 생각보다 사람이 크게 변하지는 않더라.(웃음) 작은 게 변하니까 내 마음이 크게 변한 것 같았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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