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5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 한창인 미국 출신 현대미술가 폴 매카시(72)는 작가들이 열광하는 작가이며 스타들의 스타로 통하는 세계적 거장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 동부의 현대미술에 추상 경향이 강하다면 LA 등 서부는 팝아트와 구상미술이 강세인데, 매카시는 특히 미국 서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넘지 말아야 할 선, 즉 금기를 건드리는 그의 대표작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 백설공주를 변태적 욕망을 가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해 동심을 파괴하거나 여왕·대통령 등에 대한 일종의 모독을 보여준다. 대중문화와 자본주의의 속물 근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미술품 컬렉터로 명성 높은 비욘세, 레너드 디캐프리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은 자신들이 조롱의 범주에 포함돼 있음에도 외려 ‘뺨 맞고도 웃는’ 격으로 폴 매카시를 추종한다. K2전시장의 작품은 고대 신전에서 떨어져 나온 듯 거대한 여인의 두상으로 나뒹구는 ‘백설공주’가 에로틱한 표정으로 유혹하고, 원시조각의 형태를 한 대형 조각들은 은밀한 상상을 들여다보는 듯 지키고 섰다. 세계 최초로 선보인 K3전시장의 최신작 ‘컷업(Cut Up)’ 시리즈는 작가가 자신의 나체를 본떠 3D 스캔해 제작한 조각으로, 몸을 절단해 다리를 머리에 붙이고 머리를 거꾸로 세우는 등 기괴하다. 같이 걸린 회화는 입을 지우고 성기를 코에 붙이는 등 ‘자기분열’에 가까운 표현을 보여준다. 잘린 부분의 조합이라는 점이 제조업의 상업성을 꼬집는 동시에 노년의 작가가 온몸을 던져 이 시대에 대한 참혹한 자기반성을 보여준 것이라 의미있게 봐야한다.
대표적 화랑가인 삼청로가 매카시를 비롯해 세계적 거물 화가들의 개인전이 한꺼번에 열려 ‘핫’하게 달아올랐다. 지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평생 공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엘 아나추이(73)의 국내 첫 개인전, 데미안 허스트의 스승이자 영국미술이 현대미술의 선두에 오르게 한 yBa(젊은 영국미술가 그룹)의 산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76)의 대규모 신작 개인전 등이 나란히 열려 국내 컬렉터는 물론 외신의 관심도 뜨겁다.
가나 출신의 작가 엘 아나추이는 버려진 병뚜껑을 이어 화려한 금속 태피스트리(직물)로 변형시킨다. 식민지 시대 반강제로 체결된 무역협정에 따라 수입된 술병 뚜껑을 모은 게 작업의 시작이었고 이를 통해 작가는 소비와 낭비, 환경문제까지 아우르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엘 아나추이:관용의 토폴로지’라는 제목으로 다음 달 26일까지 전시를 여는 바라캇은 150년 전통의 갤러리로 런던·LA·아부다비에 이어 지난해 10월 아시아 거점으로 서울 삼청로에 개관했다.
크레이그 마틴은 1970~80년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허스트를 비롯해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미술계의 스타 작가들을 가르쳤다. 갤러리현대에서 한창인 전시에는 최근작 회화 30여 점이 걸렸다. 휴대폰,선글라스,노트북,전구 등 현대인의 일상용품이 간결한 선과 강렬한 색으로 등장한다. 개념미술 거장의 작품 치고는 너무 쉽고 단순한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로즈업 한 와인따개의 부분 이미지는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초록뱀 같고, 거대하게 확대된 USB포트나 휴대폰 등은 선과 색면만 남은 추상처럼 보인다. 소비문화의 산물을 통해 착시와 낯설음을 주고 생각을 일깨우는 거장의 일갈이다. 전시는 다음 달 5일까지 열린다.
한편 인근 학고재갤러리는 ‘신 라이프치히 학파’의 대표작가인 독일의 젊은 스타작가 팀 아이텔, 아라리오갤러리는 중국 현대미술의 차세대 선두 작가로 꼽히는 쑨쉰의 최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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