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집권 2기가 본격 시작된 가운데 ‘시진핑 1인 독재체제와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시진핑 개인숭배 체제로 퇴보했다는 비판을 내놨고 뉴욕타임스는 시 주석을 두고 CEO(최고경영자)보다 높은 COE(Chair Of Everythingㆍ만능 주석)가 됐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인 케리 브라운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중국학 교수는 시 주석을 대부, 새로운 마오쩌둥, 황제 등으로 묘사하는 대부분의 시각을 일축한다.
영국외교관 출신으로 중국을 20년간 경험한 브라운 교수는 ‘CEO 시진핑’에서 시진핑, 그리고 시진핑과 공산당의 관계를 다각도로 분석하며 현대 중국의 정치시스템을 파헤친다. CEO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13억명이 넘는 인구 대국에서 정치와 경제, 외교, 안보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동시에 국민의 충성심과 희망, 두려움을 이용해 국가 비전을 달성하는 공산당, 그리고 이를 이끄는 시 주석이 직원의 애사심을 키우고 핵심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업과 유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복잡한 기업”이라며 “시진핑의 힘은 거대한 국가에서 독점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세계의 마지막 공산당에 대한 그의 이상, 신념, 열정 속에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교수는 시진핑에 대해 알려면 우선 중국공산당을 알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시진핑이 1인 독재를 강화하며 덩샤오핑 집권 시기 쌓아놓은 집단권력체제를 대체하고 있다는 대다수의 분석과 달리 그는 중국의 권력은 중국공산당에 있으며 시진핑은 공산당이 정해놓은 한계 안에서만 움직이는 존재라는 입장이다. “마오쩌둥과 달리 시진핑은 공산당을 키워본 적이 없고 그 속에 속해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70년 가까이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온갖 불법 행위와 폭력, 공포를 통해, 끔찍한 비극과 희생을 바탕으로 권좌에 올랐지만 공산당의 집권을 대부분의 인민이 수용하는 이유는 청나라 시절부터 외국인들의 손에 넘어가 한 세기 넘게 수모를 겪었던 중국인들의 존엄성을 중국공산당이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공산당은 분열되고 약해진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합했고 1978년 이후로는 중국 경제를 회복시켜 중국을 부유하고 강한 나라로 만들어주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가지는 신망이나 감정적 애착, 즉 애국심에 기생하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은 이 점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고 누구보다 잘 이용해 왔다.
시 주석이 후진타오 전 주석의 후임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리커창(李克强)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신앙에 가까운 신념이다. 공산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동조, 마오쩌둥에 대한 존경심을 일관되게 가졌던 시 주석은 누구보다 정신적 지주에 해당하는 공산당 총서기 역할에 맞았다. 시 주석은 공산당의 통치권을 신봉하는 뼛속까지 신자다. 유발 하라리 교수 역시 ‘사피엔스’에서 냉소적인 사람은 제국을 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운 교수는 “시진핑은 당이 위험한 상태에 빠지면 이를 움직여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 공산당의 야망과 정신을 의인화한 존재이자 공산당의 가장 충실하고 진정한 종복”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감성에 호소하는 시진핑의 화법은 마오쩌둥과 유사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의 말대로 “언어는 권력과 연계돼 있고 권력의 외관을 감싸는 옷과 같다.” 그는 자신이 펼치는 정치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사를 꺼내놓는가 하면 자신의 고뇌와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시진핑 권력의 또 다른 힘은 이데올로기다. 실제로 이번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신시대 사상(공식 명칭은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이 중국 공산당 최고규범인 당장(黨章)에 명기됐을 정도다. 이는 시 주석의 위상과 권위가 공산혁명과 건국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 개혁개방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브라운 교수는
공산당의 문서는 그 자체로 자명하며 추가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졌다”며 “하지만 시진핑에게는 공산당 고유의 언어를 좀 더 개인적인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주인 의식을 보여줄 기회였다”고 설명한다.
마오 사상에 비견되는 시진핑 사상은 ‘중국몽(차이나드림)’으로 요약된다. 2035년까지 ‘현대적이고 조화로운 창의적 고소득 사회’를 달성하겠다며 시진핑이 제시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이제 서양 따라잡기를 끝내고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제도 산적해 있다. 최소 20년간 3%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 하고 고령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비국유기업들의 성장 토양을 만들어야 하고 도시화의 토대가 될 도시 중산층과 고학력층을 키워내야 한다. 극심한 양극화와 지방 정부 부패, 소수민족 문제와 심각한 환경 오염, 허울뿐인 법치주의 등도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들로 꼽고 있다.
시진핑의 어린 시절과 중국 최고 권력으로 부상하는 과정, 그의 용병술과 인맥, 중국의 권력 기제를 두루 서술한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 흥미롭다. 특히 시진핑의 최측근으로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수장을 맡았던 왕치산, 이번 당대회에서 중앙조직부 부부장으로 승진한 천시(陳希)와 상무위원이 된 ‘정책 브레인’ 왕후닝(王?寧), ‘시코노믹스’의 핵심 브레인이자 집권 2기 경제 담당 부총리 가능성이 높은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등 시진핑의 친위세력, 이른바 시자쥔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여기에 베일에 싸인 시 주석의 비서들과 당 외부의 측근들, 정적들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저자의 내공이 돋보인다.
원서는 2016년 출간, 시진핑 집권 2기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와 전망을 담지는 못했으나 20년간의 중국 경험을 통해 내놓은 시진핑과 중국 리더십에 대한 지식과 통찰은 앞으로 시 주석의 행보, 최소 20년간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1만8,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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