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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도서전 한국 특별전시장 가보니] 소설·웹툰 보러 인산인해…뜨거운 '도서 한류'

한강의 '채식주의자' 출간 계기

현지 출판시장서 한국문화 주목

한국 학술서적까지 수요 급성장

대중문화에서 책으로 한류 확산

번역이 관건…정부차원 지원 절실

4~12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튜얍콘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이스탄불 국제 도서전 현장. 매년 50만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행사에 한국은 한국-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사진제공=대한출판문화협회




4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튜얍컨벤션센터에서 막을 올린 이스탄불 국제 도서전. 한국 특별전시장을 찾은 현지 젊은이들이 부스에 전시된 도서를 보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선다. 인기 드라마 ‘도깨비’의 화보집부터 아이돌 그룹을 소개한 잡지, 만화 형식으로 꾸며놓은 학습서와 그림책, 한국 역사와 문화를 다룬 학술서까지 다양한 책들이 고르게 주목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스에서 학술서 2권을 구입한 대학생 야세민 기르긴(21)은 “평소 홍진영, 김연자 등 한국 가수들의 음악을 즐겨 듣는데 음악을 듣다 보니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터키 출판사들이 한국 드라마를 소설로 각색한 책을 주로 내고 있는데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서적이 터키에 소개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공유 만나러 왔어요” 알에치코리아 부스에서 드라마 ‘도깨비’ 화보집을 살펴보고 있는 현지 독자들.


올해로 36회를 맞은 이스탄불 도서전에서 252㎡ 규모로 꾸며진 한국 특별전시장은 드라마나 K팝, 영화를 중심으로 피어난 한류가 책으로 확산되는 ‘한류 2.0’의 흐름이 드러난 자리였다.

신간 발행 종수만 5만4,443권으로 출판시장 규모가 14억4,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2016년 기준)에 달하는 터키는 최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기세가 한풀 꺾이고 있는 한류가 본격화되고 있는데다 한국어 학습자가 늘면서 소설, 시 등 문학 서적부터 학술 서적까지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으로서 의미가 크다.

주빈국관인 한국 특별전시관에는 다락원, 북극곰, 알에이치코리아, 여원미디어, 한국잡지협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번역서 15종을 포함해 총 140여 종의 주요 도서를 전시했다. 특히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 주요 기관에서 ‘한국 문학번역도서 특별전’ ‘전자출판 특별전’ ‘만화·웹툰 특별전’ 등을 마련했는데 웹툰이나 전자책을 살펴보려는 독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4일(현지시간) 이스탄불국제도서전 주빈국관 이벤트홀에서 최윤, 김애란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괵셀 튀르쾨주 에르지예스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최윤 작가, 부켓 우주네르 작가, 김애란 작가, 이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 교수.


참가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이날 터키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부켓 우주네르(Buket Uzuner)의 사회로 진행된 김애란·최윤 소설가와의 대담 행사는 양국의 문화적 공통점은 물론 한국과 터키 문학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여성·환경 문제부터 세대 간 갈등과 단절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 직후 최 작가는 터키 주요 매체들과 연달아 인터뷰를 진행했고 김 작가는 30분 가까이 ‘깜짝 사인회’를 이어가며 현지 독자들과 소통했다. 김 작가는 “단편소설집 ‘침이 고인다’로 이제 막 터키에 책이 소개될 찰나인데 영화 ‘두근 두근 내 인생’을 본 학생이 찾아올 정도로 반응이 뜨거워 놀랐다”며 “소설이 하는 일은 서로를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인데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대중문화였다면 친구가 되는 마지막 순서에는 문학이 놓여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주로 추리소설과 영미권의 번역서가 인기를 끄는 터키 출판시장에서 한국 문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올 초 출간되면서부터다. 소설 속에 그려진 여성과 폭력의 문제에 공감한 독자들의 관심이 이어지며 출간 7개월만에 ‘채식주의자’는 5쇄를 돌파했다. 터키문학 번역 권위자인 이난아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교수는 “최근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판권을 두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을 정도”라며 “터키의 독자들은 한국 문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다”고 단언했다.



김애란 작가가 4일(현지시간) 이스탄불 국제 도서전 주빈국관 이벤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애란, 손홍규, 안도현, 천양희, 이성복, 최윤 작가, 이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 교수.


양국의 국민성이나 생활양식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인연들로 미뤄볼 때 전문가들은 ‘도서 한류’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터키어권 한국문학 번역 권위자인 괵셀 튀르쾨주 터키 에르지예스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한국 문학은 잘만 번역하면 노벨 문학상을 받을만한 작품이 많다”며 “특히 터키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하고 정서적 공통점이 많아 한국 문학 특유의 맛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강 ‘채식주의자’,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등을 번역한 튀르쾨주 교수는 안도현의 동화 ‘연어’ 번역으로 올해 9월 ‘제15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은 바 있다.

이제 막 트인 물꼬를 이어갈 열쇠는 ‘번역’이다. 튀르쾨주 교수와 이 교수의 말을 종합해보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문학 번역자는 4~5명 정도에 불과하다. 올 들어 한국어 전공을 개설한 대학이 3곳으로 늘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세종학당을 비롯해, 다양한 민간 학글학당이 개설되고 있지만 좋은 번역자를 양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탓이다. 이 교수는 “한국 문학이 터키에서 터를 잡으려면 작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최소한 작가당 3권 이상의 대표작을 선보여야 한다”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이 작업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어렵게 지펴놓은 불씨가 쉽게 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괵셀 튀르쾨주 에르지예스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와 이난아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작가와 번역자들의 교류 역시 중요하다. 터키 대표작가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책을 모두 한국어로 번역한 이 교수는 매년 두 차례 파묵을 만나 번역 문제를 논의할 정도다. 한국 현대문학을 불어로 소개하며 번역자로 활동했던 최윤 소설가는 “보통 번역자와 원작자가 긴밀한 관계를 가질 때 좋은 번역이 이뤄진다”며 “한국 문학이 이곳에서 빛을 발하려면 한국과 터키, 양쪽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각색, 아닌 번역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12일까지 열리는 제36회 이스탄불 도서전은 매년 18개국 800여개 출판사가 참가하고 50만여명이 방문하는 국제 도서전으로 한국은 한·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5~6일 양일간 ‘터키와 한국 문학 및 만화 출판 현황’ ‘터키와 한국의 출판산업, 저작권 수출입, 아동출판’을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하는 데 이어 터키에서 ‘이슬람 정육점’ ‘연어’를 최근 출간한 손홍규, 안도현 작가가 현지 독자들과 만난다. 또 ‘한국 시 번역 워크숍’을 통해 터키어로 번역된 이성복 시인의 ‘슬퍼할 수 없는 것’ ‘서해’, 천양희 시인의 ‘새에 대한 생각’ ‘별이 사라진다’ 등 두 시인의 대표작을 낭독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스탄불(터키)=글·사진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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