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지난 9월12일 세계 최대 금융기관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가상화폐는 사기(fraud)”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가상화폐를 비난하는가 하면 반대로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고먼은 9월27일 저녁 만찬장에서 “가상화폐를 단순히 한순간의 열풍(fad)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말해 신중함을 드러냈다. 가상화폐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태도도 매우 대조적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9월 초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강수를 두는가 하면 국제결제은행(BIS)은 9월18일 발간한 16쪽짜리 보고서에서 ‘가상화폐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체적인 법정통화를 가상화폐 형태로 발행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과 금융당국들이 디지털 가상화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며 IMF는 자체적인 가상화폐, 즉 IMF코인 발행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과연 가상화폐는 사기인가, 아니면 새로운 금융의 장을 여는 신기술의 서막인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금융당국 수장들이 서로 엇갈린 견해를 내놓는 것 자체가 증거다. 우리는 이 새로운 ‘가상화폐’라는 기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화폐인가, 아닌가. 일본에서는 이미 합법적 교환수단으로 인정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결혼식 축의금마저 가상화폐로 송금한다. 남미의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 등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나라에서는 벌써 실질적 화폐로서 일반인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은 거품인가, 아닌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하드커런시(hard currency), 즉 법정통화인 지폐와 주화의 총합은 대략 6조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향후 100년 내 이 중 가상통화의 비중이 얼마까지 올라갈 것인가, 만일 가상통화의 비중이 10%까지 된다고 가정하면 선두격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현재의 6,000달러 수준도 여전히 싸다고 볼 수 있으며 반대로 100년 뒤 소멸될 것으로 본다면 현재 가격은 0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결국 모든 사람이 비트코인류의 가상화폐를 얼마나 화폐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미래 가치는 결정될 것인데 현재 시점의 우리가 단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5월 유럽의회는 가상통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소위 ‘불간섭주의(hands-off approach)’로 불리는 것으로 ‘이러한 신기술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인류에게 줄 과실을 향유한 뒤 규제해도 늦지 않다’는 내용이다. 최근 10월 말 싱가포르 금융당국인 MAS는 가상화폐를 규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가상화폐가 불법적 활동에 사용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가상화폐가 불법활동에 사용되는 것은 불법활동의 문제이지 가상화폐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불법활동 자체를 막는 조치는 좀 더 지켜보며 강구해나가겠다”고 했다. 규제에 대한 이 같은 ‘열린 태도’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최근 ICO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최근 태양광이나 유전개발,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들까지 ICO를 통한 자금조달에 나서는 등 ICO가 새로운 자금조달 방법으로 진화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왜 저렇게 조급할까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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