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한미 양국이 이견을 피하면서 서로의 실리를 취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트럼프의 방한이 대체적으로 무난했다고 보는 것은 트럼프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돌출 발언은 한미 인식 차를 부각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돌출 행동과 유엔 연설에서의 북한에 대한 막말은 한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또한 트럼프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이라는 판단하에 지레 겁을 먹고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의 아시아 방문에서 그가 세련되고 점잖은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한중일 3국은 허를 찔린 상황이 됐다. 오히려 트럼프 리스크가 왜 없었는지에 관심이 모일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조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극진히 트럼프를 대접했음에도 아베의 말에 끼어든다든지 위협적으로 아베를 몰아붙이는 장면을 이상하게 여기기보다 트럼프의 애교로 볼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트럼프가 국회 연설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한껏 올려준 것에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 즉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발전상을 평가하면서 세계에 한국을 홍보한 것에 좋은 평가를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중일 3국은 트럼프의 돌출 발언이 없었던 것에 안도하며 실리 면에서 너무나도 쉽게 트럼프에게 양보한 측면이 있었다. 그 반대급부로 각국은 트럼프의 방문으로 안보 문제에서 자신이 유리한 정치적 자산을 얻은 것에 만족한 것이다. 물론 미국은 대북 문제에서 최대한의 압박에 대한 3국(한국·일본·중국)의 동의를 받았고 트럼프 또한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경제적 성과를 어필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못지않게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미국이 힘을 보태면서 중국 견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중국은 미국의 대북 정책에 동의하면서도 미중 갈등을 통한 경제 대립을 봉쇄했다는 것에서 실리를 얻었다. 한국도 전략적 모호성 아래 한미 동맹을 관리하면서 미국의 전략적인 자산 배치, 한국의 탄도미사일 중량 한도 철폐 등 안보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성과를 얻었다. 각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의 대립이 표출되지 않으면서 나름의 실리를 챙긴 것이다.
트럼프 방문 후 앞으로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군사비 분담을 걱정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북핵 문제를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남게 됐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말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치달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트럼프 방문 후 그가 군사 옵션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조금 누그러진 것이 사실이다. 북한도 미사일 도발을 일단 멈추면서 각국의 전략을 지켜보는 국면이 된 것이다. 즉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완화되면서 각국이 서로의 전략을 살펴보는 숨 고르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트럼프와 북한 간에는 앞으로 대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대화 국면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각국은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북핵 문제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낙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북한이 도발을 완전히 멈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지금의 숨 고르기 국면을 잘 활용해 어떻게 북핵 문제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중국은 미국이 말한 최대한의 압박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유엔 제재에 국한된 것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화를 중시해야 하는 기존 입장을 결국 되풀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또한 중국 대응에 대한 미국의 협조는 얻어냈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의 실마리에 대해서는 문을 닫은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북핵 문제에서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북한 문제에 해법을 가지고 북한을 설득할 때다. 이러한 시기를 놓치면 결국 북한 핵을 안고 사는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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