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점 제한·의무휴업 적용 대상 확대에 이어 전속고발권 폐지, 파견 직원 인건비 부담 등 정부와 여당의 잇따른 규제에 유통가가 ‘패닉’에 빠졌다. 의무휴업 확대 도입 시 최소 2조 4,0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파견 직원 인건비 부담까지 질 경우 1조8,0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돼 도저히 정상 영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대형마트·백화점 등에 파견해 일하는 납품직원 인건비 가운데 50% 이상을 해당 유통시설이 부담하게 하는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 등의 종업원을 파견 받는 경우 파견조건을 서면으로 약정토록 하고, 납품업자의 파견 비용 분담비율은 50% 이하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물건을 떼다가 자기 상품으로 파는 유통업인데 파견업체가 비용을 전부 대는 직원이 이들 시설에서 일을 할 경우 임대업과 다름 없어진다는 게 법안의 논지다.
현행법에서도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 등으로부터 종업원을 파견받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납품업자가 요청하는 경우만 조건을 서면으로 약정하고 파견 종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규모유통업체들이 편법으로 납품업자에게 이 요청서를 매년 쓰게 해 상시적으로 파견 직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법안 발의의 출발점이다.
전 의원실에 따르면 일단 이 법에 적용되는 유통시설은 이마트(139480)·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와 롯데·현대·신세계(004170)·갤러리아·AK 등 백화점 5개 사다. 한국백화점협회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들 대형유통업체가 납품업체로부터 상시적으로 파견 받고 있는 판매사원은 약 12만 명(대형마트 3개사 약 3만 4,000명, 대형 백화점 5개사 약 8만 6,000명)으로 이들의 인건비만 약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이들이 추가 부담해야 될 비용은 1조8,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계 업계 추산이다.
법안 통과 시 당장 수 조 원대 손실을 직면하게 된 대형 유통업체들은 좌불안석한 분위기다. 이미 월 2회 의무휴업 대상을 쇼핑몰, 아울렛 등으로 확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돼 연 2조4,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추가적 손실은 영업에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형 유통시설은 앞으로 전통시장 주변에 들어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의견까지 수렴해야 한다. 매출·수익은 급감할 규제가 곳곳에 산적한 데 출점도 막혀 이를 상쇄할 수단도 없어진 셈이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2일 가맹·유통·대리점법 위반행위 고발을 누구나 할 수 있게 여는 법 개정을 추진키로 하면서 유·무형 손실에 대한 압박과 부담은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백화점업계 한 관계자는 “파견 직원 규제의 경우 그 파급력이 너무 커서 업계에서도 신중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정치권에서 생각하듯) 파견업체와 쉽게 5대5로 비용을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어 “결국 이 같은 규제는 소비자 편익을 침해하고 유통산업이 위축되는 부작용 외에도 일자리 감소로 연결될 것이다”고 우려했다./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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