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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자살률 1위 불명예를 씻으려면

한기정 보험연구원 원장





서울 마포대교를 건널 때면 다리 난간에 적힌 ‘위로 문구’가 눈에 띈다. “별일 없었어?” “많이 힘들었구나” “당신은…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닮았어요.” 지난 2012년 자살 예방을 위해 ‘생명의 다리’로 명명된 마포대교에는 다리 난간에 동작 인식 센서가 장착돼 있어 그 앞에 서면 난간에 불이 켜지고 위로 문구가 밝아진다. 생명의 다리를 설치한 후에도 마포대교에서는 4년간 무려 1,985명이 투신을 시도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12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해왔다. 2012년부터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정신질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50.1%,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운 사람의 68.7%,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75.1%가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정신질환과 자살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안전망(safety net)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이다. 문제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다.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면 구체적인 상황이 파악되기도 전에 피의자를 정신질환자로 낙인찍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정신질환자 병력이 남아 불이익을 받을까 봐 어지간한 정신질환으로는 병원에 가기조차 꺼린다.



정신질환자를 향한 편견이 바뀌어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정신질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보편적인 질환이다. 일반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걸릴 수 있는 질환으로 더 이상 유별난 질환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질환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신질환은 사회적 질환의 측면이 강하다. 최근에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증가하는 주된 이유는 사회적으로 불안을 야기하는 사건·사고의 다발, 취업난, 주택난, 낮은 혼인율, 높은 이혼율, 상대적 빈곤 등이다.

정신질환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적절한 보험 보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잘 준비돼 있는가. 정신질환에 대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은 충분하지 않다. 민영 건강보험도 보완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험회사는 정신질환 위험에 관한 통계가 집적돼 있지 않아 정신질환의 위험률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인수 기준도 만들지 못한다. 위험률과 구체적인 인수기준이 없으니 정신질환 보장 상품을 만들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국민건강보험은 정신질환 위험에 관한 통계를 갖고 있으므로 민영 건강보험이 통계를 공유할 수 있다면 위험률 측정과 구체적 인수 기준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정신질환의 보험 보장 강화를 위해 공사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생명의 다리’를 설치한 후에도 자살률이 줄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살, 더 나아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접근방식을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진지하게 자살 예방과 정신질환에 대한 위험 보장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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